강변 포장마차, 댄스홀 춤 선생 같은 첫맛

박미향 2008.07.30
조회수 7262 추천수 0

[맛집순례] 후쿠오카 두 명물

 

술 안 팔아 흔들리는 건 등뿐…없으면 꼬치구이집
번화가엔 새콤달콤 수채화같은 초밥, 녹차와 궁합


 

8325_untitled-4_copy.jpg


일상의 파편을 봇짐에 싸서 낯선 여행지로 향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쾌한 풍경, 아기자기한 장식품, 일탈적인 사랑….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색다른 맛에 대한 기대는 비슷하리라. 맛은 그 땅의 역사와 여행지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거센 폭풍우에 몸을 움츠리는 들판의 풀잎들처럼 봄기운이 잦아드는 날, 일본 큐슈의 북쪽에 있는 후쿠오카를 찾았다. 일본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어 일찍이 한국과 빈번했던 곳이 큐슈다.

 

후쿠오카는 큐슈의 대표적인 도시로 1889년 후쿠오카와 하카타가 합쳐져서 지금에 후쿠오카라는 이름을 얻었다.

 

7459_untitled-6_copy.jpg


해가 어스름하게 질 무렵 나카스 강변의 야타이(포장마차)를 찾았다. 야타이는 술을 먹기 위해 찾는 우리네 포장마차와 달리 라멘(일본라면)을 맛보기 위해 찾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고주망태로 흔들거리는 이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강을 끼고 길게 늘어선 야타이에 청사초롱을 닮은 붉고 노란 등이 빗방울에 래퍼처럼 장단을 맞춘다.

 

이 등이 걸려 있는 곳은 라면을 파는 곳이다. 등이 없는 곳에선 꼬치구이를 판다. 낯선 이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기웃거리자 야타이의 일본 남정네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누나, 언니, 아줌마, 처녀" 여자를 지칭하는 우리말이 쏟아진다.

 

일본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야타이는 태평양전쟁에 지고 귀국선을 탄 일본인들 중에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열었다는데 지금은 지역 명물이 되었다.

 

돼지뼈 육수에 면 굵기는 한국라면의 절반

 

차림표에서 가장 싼 가격의 라멘을 골랐다. 아마도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맛을 담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야타이 주인이 조심스럽게 내준 라멘에는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둥근 모양의 기름 고리들이 떠 있다. 일본 라멘은 무슨 양념을 썼느냐에 따라 소유(간장)라멘, 미소(된장)라멘, 시오(소금)라멘 등으로 나뉜다. 지역별로는 삿포로의 미소라멘, 키타카라의 소유라멘, 하카다의 돈고츠(돼지뼈)라멘이 유명한데 이 세 가지를 일본의 3대 라멘으로 꼽는다. 후쿠오카는 돈고츠라멘으로 유명한 곳 중의 하나다. 돈고츠라멘은 돼지 뼈와 돼지고기를 오랫동안 고아낸 육수를 쓰고, 면은 매우 얇다. 면 굵기가 한국 라면의 반 정도에 불과한 듯하다. 차슈(군운 돼지고기 편육)를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첫맛은 구레나룻 길게 기른 댄스홀 춤 선생을 만난 듯 느끼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맛은 금세 고소한 맛으로 바뀐다. 고추냉이나 붉은 생강절임 등을 풀어먹으면 느끼한 맛이 준다. 

 

6905_untitled-2_copy.jpg


덴진(天神)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치란(一蘭)'(www.ichiran.co.jp)라멘집도 들려볼 만하다.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식사시간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다른 곳의 돈고츠라멘보다 맵고, 고명처럼 라면 위에 얹혀 나오는 파는 그릇 한 가득 채울 만큼 많다. 맵고 짠 우리 라면이 서서히 그리워진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 맛이 그리워질 것이 뻔하다. 사람은 늘 두고 온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 남나 보다. 돈고츠라멘을 보면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밥과 생선이 따로 노는 듯하다가 삼킬 때 묘한 조화

 

그리움을 하나 더 보태기 위해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초밥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후쿠오카의 가장 번화가인 덴진 거리에 있는 '소라리아 스테이지'(SOLARIA STAGE) 지하 2층에 있는  초밥 집 두 곳을 찾았다.

 
9896_untitled-5_copy.jpg회전 초밥집인 '오스시야상'은 초밥 위에 얹혀 나오는 생선이 밥보다 훨씬 크다. 생선의 비릿하면서도 신선한 맛이 혀를 감싸고, 붉은 입천장을 수채화처럼 새콤달콤한 맛으로 물들인다. 밥과 생선이 따로 노는 듯하다가 삼킬 때 묘한 조화를 부리는 것이 일품이다. 밥알 사이에 공기가 적당히 들어가 맛의 기품을 더한다.

 

반해서 허겁지겁 여러 개의 초밥을 집어 들었다. 과식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쫀득한 것이 과해서 딱딱하기까지 한 초밥들도 있는데 입에 넣는 순간 밥알들이 뭉개지면서 아이들의 이유식처럼 부드럽게 녹는다. 이 집은 장어초밥이 가장 인기가 있어 일찍 동이 난다. 싼 것이 120엔, 비싼 것이 500엔 정도 한다.

 

'오스시야상'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자, 줄을 길게 선 사람들로 들머리가 보이지 않는 집을 발견했다. '효탄'(092-733-7081). '오스시야상'보다 초밥의 밥이 찰지고 쫀득하다. 이 집 역시 생선이 크고 참기름을 두른 듯 감칠맛이 제법이다. 하카다역 안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회전 초밥집 '오우가시'도 찾았다. 초밥에 대한 마지막 열정을 태우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다. 이 집은 한국에 있는 초밥집들과 맛이 비슷했다. 쫄깃한 밥과 생선이 함께 어울리는 맛이 있다.  

 

5980_untitled-3_copy.jpg


원래 생선의 저장법에서 시작…밥알 사이 공기가 기품 좌우

 

초밥은 원래 생선의 저장법에서 시작됐다. 쌀이나 밥 등을 생선과 함께 절이면 밥이 발효할 때 생기는 유산 때문에 생선이 부패하지 않는다. 이 저장법이 발달해서 나레즈시초밥이 생겼다. 나레즈시초밥은 일본의 옛 초밥으로, 소금을 넣어 잘 섞은 밥을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생선 배 속에 채운 뒤 나무상자에 넣고 무거운 돌로 누른 상태에서 수주일에서 수개월 동안 재워 두어 자연 유산 발효시킨 다음 생선만을 먹는 것이다. 지금처럼 식초를 넣어 만드는 초밥은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제조시간을 당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초밥의 밥은 사람의 체온(약 36.5도)과 같은 온도에서 만들기 쉽고 맛도 있다. 요리사의 손 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서양식 요리와 함께 곁들이는 게 와인이라면, 초밥은 녹차와 어울린다. 녹차는 입안의 생선냄새와 기름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최고의 초밥은 밥알 사이에 적당한 공기가 있는 것이다. 일본만화 '초밥아가씨 사치'(시세고 무라카미 지음)에 보면 초밥 장인은 밥알이 200개인 초밥보다 100개인 초밥을 더 맛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적은 밥알 사이로 적당한 공기가 들어가서 부드러운 맛을 더하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부서질 수 있다. 흩어지지 않으면서 공기를 밥 사이에 잘 넣는 것, 이것이 최고 초밥 요리사의 실력이라고 한다.

 

3316_untitled-1_copy.jpg


먹을거리는 큰 경험이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고 오르가즘을 능가하는 쾌감이다. 기쁜 맛이 커지는 것만큼 '배움'도 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찾아보는 초밥 이야기들이 여행의 여운을 더 진하게 만든다.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311/281/trackback
List of Articles

은은한 그대 눈동자 불빛 삼아 맛있는 사랑을

  • 박미향
  • | 2008.12.19

송년회에 딱! ③ 아담하고 등 낮아 서로의 얼굴만 가슴에 ‘쏙’ 시간은 멈추고 소리마저 숨죽여 ‘곁’을 시샘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자 친구와 함께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본다는 후배가 있었다. 매년 같은 내용의 발레가 무대에 올랐지만 그의 곁은 언제나 다른 여인네들로 채워졌다. 그가 바람둥이냐고?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순정남이다. 적은 월급에도 ...

껍질-빵-과일·아이스크림 궁합 ‘사각사각’

  • 박미향
  • | 2008.10.20

[맛집순례] 와플집 &lt;상&gt; 강북 벨기에가 원조, 한국 어묵같은 ‘거리의 주전부리’ 데이트족·여성 단골…커피와 함께 ‘수다’향 진동 가회동에 있는 와플집인 &lt;장명숙 갤러리 카페&gt; 바삭바삭한 껍질을 씹어 먹고 나면 그 안에 포근한 빵들이 내 안에 들어오고 토핑재료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면 그 궁합을 따져보는 큰 재미가 있는 요리. 와플(...

떡볶이에서 궁중요리까지 숨은듯 만듯

  • 박미향
  • | 2008.10.03

[맛집순례] 가회동 맛집 고즈넉한 한옥 풍취 따라 눈맛 먼저 '은은' 최근 서구풍 커피집과 레스토랑까지 가세 주말이면 걷기조차 힘든 삼청동의 화려함 때문에 요즘 서울의 멋쟁이들은 오히려 가회동을 찾는다. 삼청동 옆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가회동은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을 끼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고관대작과 왕실 종친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은 한옥이 주는 ...

‘밑이 구려’ 미꾸리, 몸보신 ‘가을의 전설’

  • 박미향
  • | 2008.09.12

[맛집순례] 추어탕집 ‘겨울잠’ 자기 전 도톰한 살, 고단백 덩어리 뽀글뽀글 방귀대장, 알고 보면 창자호흡 탓 이 세상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때를 가리지 않고 뿜어 나오는 방귀는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방귀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를 웃음꽃 피는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찬바람 부는 시베리아 벌판으로도 만든다. 기대를 담뿍 안은...

울릉도 가면 꼭 맛봐야할 건 회? 나물!

  • 박미향
  • | 2008.09.05

[맛집순례] 울릉도 맛집 쇠고기맛 나는 삼나물, 그보다 더 비싼 참고비 바다바람 덕에 천연 무공해…약소는 예약필수   배가 포구에 들어서자마자 짠내가 코털을 건드린다. 동해바다 봉긋 솟은 섬, 울릉도. 온갖 팔딱팔딱 뛰는 생선들이 섬을 찾은 이들의 혀를 유혹할 것 같지만 이 섬에 최고로 맛난 것은 나물이다.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울...

추억의 유혹, 빙수도 ‘요리’다

  • 박미향
  • | 2008.08.06

[맛집순례] 빙수집 제과기능장 운영 빙과점의 3색 맛 ‘얼얼’ 초콜릿‘명장’ 손맛 초코빙수 달콤쌉싸름 "팥 넣고 푹 끓인다/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가수 윤종신의&lt;팥빙수&gt; 노랫말 가운데 일부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입 안으로 쏙 들어오고...

일본 맛 여행 요것만은 알고 가자

  • 박미향
  • | 2008.07.30

[맛집 순례] 관광청 가이드북·미식가 블로그·맛 지도는 필수 그냥 갔다면 ‘식당 만유인력 법칙’인 ‘줄’을 보라 맛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맛집 여행객들이다. 특히 미식의 천국, 일본으로 향하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은 구루메(미식가) 블로그만 해도 수만 개에 이른다. 최근 &lt;일본에 ...

간단하나 간단찮은 ‘맛의 단편소설집’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신사동 가로수길 샌드위치집들 끼니 거르고 카드놀이 빠진 백작 위한 음식 ‘대충 떼우는’걸로 생각하면 만만찮은 오산 &lt;찰리와 초콜릿 공장&gt;의 작가 로알드 달의 책 &lt;맛&gt;의 겉장을 열면 11개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섬세한 와인의 맛을 이용해 사욕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에 관한 이야기나 바람난 빅스빅 부인의 털외투에 관한 얘기 등 ...

라면vs라멘, 후딱 후루룩 쩝!?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서울의 일본 라멘집들 한국은 '떼우기'지만 일본은 국가대표 요리 ‘일본맛’ 그대로 속속 서울 상륙…체인점도 한 선배가 밥상 앞에서 흰소리를 한다. 인간의 본능 중에 성욕과 식욕은 닮은 구석이 많아서, 이불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식사를 즐기는 시간과 비례한다고. 그 선배는 천천히 숟가락을 뜨면서 이미 후딱 밥공기를 비워버린 옆자리 동료에게 ...

강변 포장마차, 댄스홀 춤 선생 같은 첫맛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후쿠오카 두 명물 술 안 팔아 흔들리는 건 등뿐…없으면 꼬치구이집 번화가엔 새콤달콤 수채화같은 초밥, 녹차와 궁합 일상의 파편을 봇짐에 싸서 낯선 여행지로 향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쾌한 풍경, 아기자기한 장식품, 일탈적인 사랑….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색다른 맛에 대한 기대는 비슷하리라. 맛은 그 땅의 역사와 여행지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