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나 간단찮은 ‘맛의 단편소설집’

박미향 2008.07.30
조회수 6362 추천수 0

[맛집순례] 신사동 가로수길 샌드위치집들

 

끼니 거르고 카드놀이 빠진 백작 위한 음식
‘대충 떼우는’걸로 생각하면 만만찮은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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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의 책 <맛>의 겉장을 열면 11개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섬세한 와인의 맛을 이용해 사욕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에 관한 이야기나 바람난 빅스빅 부인의 털외투에 관한 얘기 등 익히고 찌거나 튀긴 별의별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있다.

 

김중혁의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도 작은 8개의 이야기 묶음이 있다. "음악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이라는 둥,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하나의 오류"라는 둥 작가 김씨의 독특한 소리들이 까만 글자 사이로 튀어 나온다.

 

단편 소설집이 좋은 이유는 반찬의 가짓수가 많은 식탁처럼 여러 개의 맛이 있다는 것이다. 겉장과 마지막장 사이에 온갖 종류의 맛이 있다. 달고 쓰고 맵고.

 

모양과 쓰임, 들어가는 필링 따라 종류 숱해

 

단편소설집과 가장 닮은 요리는 샌드위치다. 빵의 겉장과 마지막장 사이에 붉은 토마토나 푸른 루꼴라, 아보카도를 발견하는가 싶더니 이내 익힌 가지와 튀긴 양파, 기름진 베이컨이 보인다.

 

샌드위치는 카드놀이가 탄생시킨 요리다. 18세기 영국에서 끼니도 거른 채 트럼프놀이에 푹 빠져 있던 백작 주인을 위해 충직한 하인이 '놀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든 것이 시초다. 하인은 빵 사이에 야채와 얇게 자른 로스트 비프를 넣어 주인에게 대령했고 주인은 뛸 듯이 기뻐했다. 샌드위치는 그 백작의 이름이다.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샌드위치는 바쁜 사람들을 위한 간편 음식이다. 하지만 빵 위에 무엇을 올려놓느냐에 따라 맛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낼 수 있다. 한 장의 빵 위에 여러 가지를 올려놓는 '오픈 샌드위치', 두 장의 덮개가 있는 '클로즈드 샌드위치',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말아서 파티에 많이 사용되는 '스터프트 샌드위치', 그릴에 데운 '파니니' 등 그 모양과 쓰임, 들어가는 필링(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속)에 따라 숱한 종류의 샌드위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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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 집들이 여럿 있다. 이 길에는 와인 바부터 현대풍의 한식집, 유럽풍의 케이크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맛집들이 밀집해 있는데, 샌드위치 집들도 그 중 하나다.

 

압구정동에서 신사동 쪽으로 가다 보면 3분의 1쯤 되는 오른쪽 길목에 '부첼라'(02-517-7339)가 있다. 가로수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이른 아침부터 바쁜 아침을 준비하는 이들로 분주하다. 녹색과 벽돌색으로 꾸민 입구는 지중해 작은 음식점 같은 느낌을 준다. 피타 빵의 부드러움과 치아바타빵의 단단함으로 무장한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든다. 유럽인들은 침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많은 편이다. 딱딱한 바게트빵을 프랑스인들이 편하게 먹는 이유는 우리보다 침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꼬르동 블루 출신의 요리사(이름을 밝히길 꺼린다)인 부첼라의 주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침에 잘 맞는 빵을 만들고 싶었단다. 이 곳의 빵은 그가 개발한 것이다. 기계로 발효를 하지 않고, 자연 발효를 해서 향이 풍부하다. 빵도 필링도 모두 직접 만든 것이다.

 

소식을 하는 이라면 샌드위치 하나로 두 끼니는 넉넉히 해결할 수 있다. 촉촉한 빵이 입술을 문지르고 그 사이로 야채 즙이 쫄쫄 흐른다. 샌드위치도 남부럽잖은 요리라는 점을 과시하듯, 지지고 볶은 갖가지 재료들이 샌드위치 안에 듬뿍 들어 있다. 바쁜 이들을 위한,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요리다. 부첼라는 라틴어로 '한 입 크기'란 뜻인데 '한 입 크기 양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의미도 담고 있단다. 값은 6500~8000원.

 

집집마다 요리사 경력도 간단치 않아

 
untitled-20_copy.jpg압구정동 쪽에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도로 안쪽에 '다이너 라이크'(02-3446-2422)가 있다. 들머리와 그 옆 벽이 큰 창으로 훤하게 열려 있어 누구나 쉽게 걸음을 내딛는다. 맞은편 부엌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해 주방에 대한 신뢰감을 준다.

 

이곳은 이탈리아식 파니니(그릴에 데운 샌드위치)가 제법 푸짐하게 나온다. 두꺼운 고기 필링은 씹을 때마다 고기의 결과 향이 물씬 배어나온다. 느끼함을 느낄 찰나에 아삭아삭한 야채들이 입안으로 달려들어 거북함을 느낄 틈이 없다. 피타샌드위치가 가장 인기가 높다. 영국에서 공부한 경력 5년의 요리사 강종민(34)씨가 만든다. 빵도 직접 굽는다. 샌드위치 외에도 독특한 동남아식 커리나 스파게티, 간단한 서양식 요리들도 있다. 아늑한 구조가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만든다. 값은 6천~1만2천원. 오후 7시 이전에 밀 맥주를 주문하면 여름 동안에는 500cc를 6천원에 마실 수 있다. 7시가 넘으면 8천원.

 

길을 건너면 '체롭스'(02-548-0564)가 있다. 식탁에 앉으면 마치 빨간 연지를 바른 빅토리아시대의 영국 귀족이 된 듯하다. 온통 앤틱 가구가 안을 당당히 지키고 있다. 주인 최유미(38)씨는 영국에서 앤틱 가구를 판다.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했지만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싶어서 영국에 갔고 그곳에서 앤틱가구를 만나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8년 전 이곳은 가수 임희순씨가 라이브카페를 하던 곳인데 이제는 앤틱 가구의 고풍스러움을 느끼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곳으로 변했다. 비프샌드위치, 클럽샌드위치 등 다양하다. 값은 6000~1만2000원.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담백한 샌드위치들이다. 밤에는 와인바로 변한다.

 
untitled-19_copy.jpg체롭스에서 신사동 쪽으로 3분 걸어가면 '그릴 다이닝 룩앤미'(02-3442-0061)가 나타난다. 길모퉁이에 콕 박혀 있어서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다. 이곳은 테이크아웃하는 것이 편하다. 안이 조금 작다. '허브 발사믹 어니언 샌드위치' 등 파니니까지 합쳐 다섯 가지가 있다. 값은 4500~6000원. 담담한 듯, 신경질적인 듯, 새콤한 듯, 달콤한 듯한 맛들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 알아두면 좋은 샌드위치 요리 상식

 

샌드위치용 빵은 구운 지 하루 정도 지난 것이 적당하다. 그래야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둥글게 마는 롤 모양의 샌드위치는 6시간 정도 지난 것이 좋다. 빵의 두께는 1cm 정도로 써는 것이 일반적이다. 빵은 부드러운 것, 바게트 빵, 구운 것, 곡물 빵, 보리 빵, 호밀 빵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샌드위치를 만들 것이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 때는 두껍고 단단한 보리빵이 제격이다.

 

필링을 빵 사이에 채워 넣기 전에 버터나 마가린, 마요네즈 등으로 빵 안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 속에서 흘러나오는 수분 때문에 빵이 구멍 난 양말처럼 뻥하고 뚫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버터보다는 지방이 적은 유제품에 겨자나 레몬, 마늘, 파슬리, 엔쵸비 등을 섞은 것을 많이 사용한다. 바른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필링은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넣는다. 적당한 야채와 쫄깃한 고기로 조화를 부려도 되고 상큼한 채소로만 신선한 세계를 펼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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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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