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유혹, 빙수도 ‘요리’다

박미향 2008.08.06
조회수 11735 추천수 0

[맛집순례] 빙수집

 

제과기능장 운영 빙과점의 3색 맛 ‘얼얼’

초콜릿‘명장’ 손맛 초코빙수 달콤쌉싸름

 

 

Untitled-6 copy.jpg


"팥 넣고 푹 끓인다/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가수 윤종신의<팥빙수> 노랫말 가운데 일부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입 안으로 쏙 들어오고 침이 고인다. 엿처럼 찐득찐득한 단맛을 내는 팥과 차가운 얼음의 조합이 희한하다.

 

빙수는 '요리'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만드는 법이 간단하다. 주재료는 물론 얼음이다. 맑고 깨끗한 얼음과 다양한 토핑이 맛을 결정한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에 가장 맛난 것은 얼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조상들은 석빙고를 만들어 얼음을 보관하고 먹었다. 석빙고는 신라시대 때부터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 흔적이 남아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 건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조상들은 한겨울에 꽝꽝 얼은 얼음을 뚝 떼어내 석빙고에 보관하고 여름에 꺼내 먹었다. 석빙고는 화강암으로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구조를 만들고 진흙과 석회를 발라서 외부의 열을 차단했다. 안에는 경사가 있어 녹은 얼음물은 밖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배수구를 만든 셈이다. 조상의 지혜가 놀랍다. 석빙고에는 얼음만 보관한 것은 아니었다. 찬 음식도 지금의 냉장고처럼 보관해서 먹곤 했다.

 

클래식, 와인, 녹차 빙수 골라 먹는 재미

 

Untitled-5 copy.jpg

 

예전 석빙고의 얼음요리 같은 것을 맛보기는 힘들지만 색다른 빙수요리들이 많이 등장해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도곡동 <페르에피스>에는 세 가지 맛의 빙수가 있다. 이 집은 대한민국제과기능장 보유자인 김영모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의 빵집 '김영모제과점'이 옆집이다.

 

1982년,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과점을 세웠다. 맛이 황홀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직원 130명에 점포 네 곳을 운영하는 큰 기업이 되었다. 

 

이 집의 첫 번째 맛 '클래식 팥빙수'는 50대에게 인기가 많다. 몇 숟가락 먹으면 저절로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수북한 얼음 위에 팥이 듬뿍 담겨 있다. 올라간 토핑도 그저 떡과 젤리, 아이스크림 정도다. 팥 고유의 향이 솟구친다.

 

책임자인 성시학 요리사는 "예전에는 눈꽃 얼음이니, 요상한 토핑이 많이 들어간 것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기교 없이 얼음 알갱이가 굵고 토핑도 적은 것"이 인기라고 말한다. 달짝지근한 겨울이 입안 가득 여름을 밀어낸다. 

 

두 번째 '와인빙수'는 와인을 끓여서 알코올을 날려버리고 입안에 남는 텁텁한 기운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날려버리는 얼음요리다. 와인 외에 블루베리, 라즈베리, 아몬드전병, 샤워체리 등이 들어간다. 빨간 여름을 마주보는 느낌이다. 열정으로 가득한 남미의 한 귀퉁이를 빨아먹는다. 차가운 적도가 더위로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세 번째 '녹차 빙수'는 자연의 향이 난다. 녹차 맛도 맛이지만 얼음덩이를 먹을 때마다 그 알갱이를 따라 톡톡 입안에서 튀어나오는 튀긴 호두의 맛도 좋다.

 

실패한 초콜릿이 기막힌 맛으로 화려한 변신

 

 

Untitled-4 copy.jpg빙수음식은 찌지도 삶지도 튀기지도 않는다. 살균의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와 만드는 과정의 위생상태가 중요하다.

 

초콜릿집으로도 유명한 <일카카오>에는 초코빙수가 있다. 잘게 부순 얼음 위에 조각난 초콜릿이 박혀 있다. "만들다가 실패한 초콜릿들을 넣는다. 맛이 다른 세 가지가 들어가 있다"라고 주인 최영경씨가 말한다. 그 위에 건과일, 포도, 아몬드, 계절과일 등이 토핑으로 올라가고 최씨가 만든 아이스 초코 소스가 뿌려진다. 이 빙수의 맛은 아이스 초코 소스에 있다. 생크림, 초콜릿 등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최씨가 개발한 것이란다. 

 

최씨는 이탈리아에서 초콜릿을 공부한 이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우고 싶어 이탈리아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그가 반한 것은 디저트의 꽃인 초콜릿이었다. 문을 닫고 남미 카카오 농장을 여행할 정도로 그의 초콜릿 사랑은 대단하다. 그의 손맛이 묻은 빙수 역시 색다르다.

 

초콜릿은 달콤하면서도 쓴 맛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독을 숨기기에 적합하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아끼는 맛난 것이 되었다.

 

70년대 팥빙수 맛이 그리우면 장충동 <태극당>(02-2279-3152)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안 <밀탑>(02-547-6800)을 찾으면 된다. 예전에 뻥튀기 아저씨가 나타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신나서 춤을 추던 시절의 맛이다. 

 

당시 달고나, 뽑기 같은 불량식품들도 아이들의 친구였고 빙수는 특히나 인기만점이었다. 큰 덩이 얼음이 요상하게 생긴 기계 안으로 들어가서 잘게 부서져 나오는 모양 자체가 볼거리였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여름이 되면 빙수는 인기만점 스타다. 

 

<페르에피스>의 빙수는 8천~1만원(02-3460-2005)이고 <일카카오> 빙수는 1만원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381/ed4/trackback
List of Articles

은은한 그대 눈동자 불빛 삼아 맛있는 사랑을

  • 박미향
  • | 2008.12.19

송년회에 딱! ③ 아담하고 등 낮아 서로의 얼굴만 가슴에 ‘쏙’ 시간은 멈추고 소리마저 숨죽여 ‘곁’을 시샘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자 친구와 함께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본다는 후배가 있었다. 매년 같은 내용의 발레가 무대에 올랐지만 그의 곁은 언제나 다른 여인네들로 채워졌다. 그가 바람둥이냐고?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순정남이다. 적은 월급에도 ...

껍질-빵-과일·아이스크림 궁합 ‘사각사각’

  • 박미향
  • | 2008.10.20

[맛집순례] 와플집 &lt;상&gt; 강북 벨기에가 원조, 한국 어묵같은 ‘거리의 주전부리’ 데이트족·여성 단골…커피와 함께 ‘수다’향 진동 가회동에 있는 와플집인 &lt;장명숙 갤러리 카페&gt; 바삭바삭한 껍질을 씹어 먹고 나면 그 안에 포근한 빵들이 내 안에 들어오고 토핑재료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면 그 궁합을 따져보는 큰 재미가 있는 요리. 와플(...

떡볶이에서 궁중요리까지 숨은듯 만듯

  • 박미향
  • | 2008.10.03

[맛집순례] 가회동 맛집 고즈넉한 한옥 풍취 따라 눈맛 먼저 '은은' 최근 서구풍 커피집과 레스토랑까지 가세 주말이면 걷기조차 힘든 삼청동의 화려함 때문에 요즘 서울의 멋쟁이들은 오히려 가회동을 찾는다. 삼청동 옆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가회동은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을 끼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고관대작과 왕실 종친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은 한옥이 주는 ...

‘밑이 구려’ 미꾸리, 몸보신 ‘가을의 전설’

  • 박미향
  • | 2008.09.12

[맛집순례] 추어탕집 ‘겨울잠’ 자기 전 도톰한 살, 고단백 덩어리 뽀글뽀글 방귀대장, 알고 보면 창자호흡 탓 이 세상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때를 가리지 않고 뿜어 나오는 방귀는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방귀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를 웃음꽃 피는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찬바람 부는 시베리아 벌판으로도 만든다. 기대를 담뿍 안은...

울릉도 가면 꼭 맛봐야할 건 회? 나물!

  • 박미향
  • | 2008.09.05

[맛집순례] 울릉도 맛집 쇠고기맛 나는 삼나물, 그보다 더 비싼 참고비 바다바람 덕에 천연 무공해…약소는 예약필수   배가 포구에 들어서자마자 짠내가 코털을 건드린다. 동해바다 봉긋 솟은 섬, 울릉도. 온갖 팔딱팔딱 뛰는 생선들이 섬을 찾은 이들의 혀를 유혹할 것 같지만 이 섬에 최고로 맛난 것은 나물이다.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울...

추억의 유혹, 빙수도 ‘요리’다

  • 박미향
  • | 2008.08.06

[맛집순례] 빙수집 제과기능장 운영 빙과점의 3색 맛 ‘얼얼’ 초콜릿‘명장’ 손맛 초코빙수 달콤쌉싸름 "팥 넣고 푹 끓인다/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가수 윤종신의&lt;팥빙수&gt; 노랫말 가운데 일부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입 안으로 쏙 들어오고...

일본 맛 여행 요것만은 알고 가자

  • 박미향
  • | 2008.07.30

[맛집 순례] 관광청 가이드북·미식가 블로그·맛 지도는 필수 그냥 갔다면 ‘식당 만유인력 법칙’인 ‘줄’을 보라 맛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맛집 여행객들이다. 특히 미식의 천국, 일본으로 향하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은 구루메(미식가) 블로그만 해도 수만 개에 이른다. 최근 &lt;일본에 ...

간단하나 간단찮은 ‘맛의 단편소설집’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신사동 가로수길 샌드위치집들 끼니 거르고 카드놀이 빠진 백작 위한 음식 ‘대충 떼우는’걸로 생각하면 만만찮은 오산 &lt;찰리와 초콜릿 공장&gt;의 작가 로알드 달의 책 &lt;맛&gt;의 겉장을 열면 11개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섬세한 와인의 맛을 이용해 사욕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에 관한 이야기나 바람난 빅스빅 부인의 털외투에 관한 얘기 등 ...

라면vs라멘, 후딱 후루룩 쩝!?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서울의 일본 라멘집들 한국은 '떼우기'지만 일본은 국가대표 요리 ‘일본맛’ 그대로 속속 서울 상륙…체인점도 한 선배가 밥상 앞에서 흰소리를 한다. 인간의 본능 중에 성욕과 식욕은 닮은 구석이 많아서, 이불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식사를 즐기는 시간과 비례한다고. 그 선배는 천천히 숟가락을 뜨면서 이미 후딱 밥공기를 비워버린 옆자리 동료에게 ...

강변 포장마차, 댄스홀 춤 선생 같은 첫맛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후쿠오카 두 명물 술 안 팔아 흔들리는 건 등뿐…없으면 꼬치구이집 번화가엔 새콤달콤 수채화같은 초밥, 녹차와 궁합 일상의 파편을 봇짐에 싸서 낯선 여행지로 향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쾌한 풍경, 아기자기한 장식품, 일탈적인 사랑….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색다른 맛에 대한 기대는 비슷하리라. 맛은 그 땅의 역사와 여행지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