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순례] 빙수집
제과기능장 운영 빙과점의 3색 맛 ‘얼얼’
초콜릿‘명장’ 손맛 초코빙수 달콤쌉싸름
"팥 넣고 푹 끓인다/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가수 윤종신의<팥빙수> 노랫말 가운데 일부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입 안으로 쏙 들어오고 침이 고인다. 엿처럼 찐득찐득한 단맛을 내는 팥과 차가운 얼음의 조합이 희한하다.
빙수는 '요리'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만드는 법이 간단하다. 주재료는 물론 얼음이다. 맑고 깨끗한 얼음과 다양한 토핑이 맛을 결정한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에 가장 맛난 것은 얼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조상들은 석빙고를 만들어 얼음을 보관하고 먹었다. 석빙고는 신라시대 때부터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 흔적이 남아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 건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조상들은 한겨울에 꽝꽝 얼은 얼음을 뚝 떼어내 석빙고에 보관하고 여름에 꺼내 먹었다. 석빙고는 화강암으로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구조를 만들고 진흙과 석회를 발라서 외부의 열을 차단했다. 안에는 경사가 있어 녹은 얼음물은 밖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배수구를 만든 셈이다. 조상의 지혜가 놀랍다. 석빙고에는 얼음만 보관한 것은 아니었다. 찬 음식도 지금의 냉장고처럼 보관해서 먹곤 했다.
클래식, 와인, 녹차 빙수 골라 먹는 재미
예전 석빙고의 얼음요리 같은 것을 맛보기는 힘들지만 색다른 빙수요리들이 많이 등장해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도곡동 <페르에피스>에는 세 가지 맛의 빙수가 있다. 이 집은 대한민국제과기능장 보유자인 김영모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의 빵집 '김영모제과점'이 옆집이다.
1982년,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과점을 세웠다. 맛이 황홀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직원 130명에 점포 네 곳을 운영하는 큰 기업이 되었다.
이 집의 첫 번째 맛 '클래식 팥빙수'는 50대에게 인기가 많다. 몇 숟가락 먹으면 저절로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수북한 얼음 위에 팥이 듬뿍 담겨 있다. 올라간 토핑도 그저 떡과 젤리, 아이스크림 정도다. 팥 고유의 향이 솟구친다.
책임자인 성시학 요리사는 "예전에는 눈꽃 얼음이니, 요상한 토핑이 많이 들어간 것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기교 없이 얼음 알갱이가 굵고 토핑도 적은 것"이 인기라고 말한다. 달짝지근한 겨울이 입안 가득 여름을 밀어낸다.
두 번째 '와인빙수'는 와인을 끓여서 알코올을 날려버리고 입안에 남는 텁텁한 기운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날려버리는 얼음요리다. 와인 외에 블루베리, 라즈베리, 아몬드전병, 샤워체리 등이 들어간다. 빨간 여름을 마주보는 느낌이다. 열정으로 가득한 남미의 한 귀퉁이를 빨아먹는다. 차가운 적도가 더위로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세 번째 '녹차 빙수'는 자연의 향이 난다. 녹차 맛도 맛이지만 얼음덩이를 먹을 때마다 그 알갱이를 따라 톡톡 입안에서 튀어나오는 튀긴 호두의 맛도 좋다.
실패한 초콜릿이 기막힌 맛으로 화려한 변신
빙수음식은 찌지도 삶지도 튀기지도 않는다. 살균의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와 만드는 과정의 위생상태가 중요하다.
초콜릿집으로도 유명한 <일카카오>에는 초코빙수가 있다. 잘게 부순 얼음 위에 조각난 초콜릿이 박혀 있다. "만들다가 실패한 초콜릿들을 넣는다. 맛이 다른 세 가지가 들어가 있다"라고 주인 최영경씨가 말한다. 그 위에 건과일, 포도, 아몬드, 계절과일 등이 토핑으로 올라가고 최씨가 만든 아이스 초코 소스가 뿌려진다. 이 빙수의 맛은 아이스 초코 소스에 있다. 생크림, 초콜릿 등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최씨가 개발한 것이란다.
최씨는 이탈리아에서 초콜릿을 공부한 이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우고 싶어 이탈리아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그가 반한 것은 디저트의 꽃인 초콜릿이었다. 문을 닫고 남미 카카오 농장을 여행할 정도로 그의 초콜릿 사랑은 대단하다. 그의 손맛이 묻은 빙수 역시 색다르다.
초콜릿은 달콤하면서도 쓴 맛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독을 숨기기에 적합하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아끼는 맛난 것이 되었다.
70년대 팥빙수 맛이 그리우면 장충동 <태극당>(02-2279-3152)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안 <밀탑>(02-547-6800)을 찾으면 된다. 예전에 뻥튀기 아저씨가 나타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신나서 춤을 추던 시절의 맛이다.
당시 달고나, 뽑기 같은 불량식품들도 아이들의 친구였고 빙수는 특히나 인기만점이었다. 큰 덩이 얼음이 요상하게 생긴 기계 안으로 들어가서 잘게 부서져 나오는 모양 자체가 볼거리였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여름이 되면 빙수는 인기만점 스타다.
<페르에피스>의 빙수는 8천~1만원(02-3460-2005)이고 <일카카오> 빙수는 1만원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