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구려’ 미꾸리, 몸보신 ‘가을의 전설’

박미향 2008.09.12
조회수 11975 추천수 0

[맛집순례] 추어탕집

 

‘겨울잠’ 자기 전 도톰한 살, 고단백 덩어리
뽀글뽀글 방귀대장, 알고 보면 창자호흡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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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때를 가리지 않고 뿜어 나오는 방귀는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방귀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를 웃음꽃 피는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찬바람 부는 시베리아 벌판으로도 만든다. 

 

기대를 담뿍 안은 채 꽃단장을 하고 나간 맞선 자리에서 진한 방귀 한 자락이면 '맞선'이고 뭐고 없다. 바로 파장 분위기가 된다. 애정계에서 소위 '작업 선수'들은 그것조차 귀엽게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데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처 백 개쯤은 있어야 한다.

 

‘동글이’ 미꾸리와 ‘납작이’ 미꾸라지 두 종류

 

이토록 위력이 대단한 방귀를 물속에서 붕붕 뀌는 물고기가 있다면 믿겠는가? 더구나 그것을 우리가 먹는다고 한다면? 세상 모든 민망한 방귀는 그 물고기 탓으로 돌려버릴까? 그 유자명자한 물고기가 미꾸라지다. 

 

우리가 흔히 미꾸라지로 알고 있는 물고기는 미꾸리와 미꾸라지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미꾸리는 몸이 동글기 때문에 '동글이', 미꾸라지는 '동글이'보다는 납작해서 '납작이'라고도 부른다. 이 둘은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외모에는 큰 차이가 없어 '미꾸라지'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외형상의 차이는 미꾸라지의 수염이 미꾸리보다 두 배 정도 길다는 점이다) 바로 이놈이 방귀를 뀐다. 미꾸리는 '밑 구리'에서 시작된 말인데 왜 '밑이 구리'냐면, 방귀 때문이라는 것.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아가미가 발달하지 않아서 창자 벽에 있는 실핏줄로 이산화탄소를 교환한다. 창자호흡을 하는 것이다. 이때 들이마신 공기가 항문을 통해 보글보글 공기방울이 되어 나간다. 사람들은 그 모양새를 보고 방귀를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몸보신용으로 자주 먹는 추어탕은 바로 이놈으로 만든다. 그럼 미꾸라지탕이라고 하지 않고 왜 추어(秋魚, 鰍魚)탕이라고 할까? 이름 그대로 가을에 많이 잡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논과 도랑, 흙탕물에서 사는 이놈은 겨울잠을 자는데 이때는 살이 빠져 맛이 없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가을에 가장 살이 도톰하게 올라 맛난 상태다. 

 

한번이라도 먹어본 이라면 짐작하겠지만 단백질이 풍부하다. 그래서 저렴한 보양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몸은 짧고 작으며 항상 진흙 속에 있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고 독이 없다'고 적혀 있다. 

 

30년 통추어탕, 보글보글 솥단지에 ‘귀맛’부터 쫑긋

 

Untitled-1 copy.jpg더워서 괴로웠던 여름이 가고 살랑살랑 옅은 가을바람이 찾아오면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가을 먹을거리를 찾아나서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미식가의 신나는 의무다. 

 

추어탕은 생선의 몸통을 그대로 넣어 끓인 것과 곱게 갈아서 만든 것 두 가지가 있다. 미끈한 비늘 때문에 여성들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인 것을 잘 먹지 않지만 추어탕 맛을 제대로 볼라치면 몸통을 그대로 들어간 '통추어탕'을 먹어 보아야 한다. 

 

역삼동에 있는 <원주추어탕>은 비릿하지 않은 '통추어탕'이 있는 집이다. 이곳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맛난 곳에 대해서는 일가견 하는 택시기사들조차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곳이다. 1977년에 시작한 이 집은 삼십년 동안 대를 이어 맛을 지키고 있다. 

 

<원주추어탕>의 통추어탕은 작은 솥단지에 나온다.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혓바늘이 신나서 발딱 서기 전에 귀가 먼저 쫑긋하다. 소리로 맛을 짐작한다. 널찍한 감자와 얇게 썬 버섯이 커다란 미꾸라지 사이를 헤엄친다. 솥단지가 작아 양이 적어 보이지만 미꾸라지들이 어림잡아도 열 마리가 넘는다. 간간이 풀어헤친 달걀의 섬세한 결들도 보인다. 매끈한 미꾸라지의 피부가 혀에 닿는 순간 부드럽고 연한 느낌이 전해지고, 이어 좋은 멸치만이 줄 수 있는 고소함이 찾아온다. 작고 오돌오돌한 뼈가 제법 씹는 맛이 있어 좋다. 

 

통추어탕은 비릿한 맛과 흙내가 나기 쉽다. 이 역한 향들을 어떻게 없애는 지가 중요하다. 추어탕 집마다 비법이 숨어 있다. 통사정을 해도 비법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 집의 통추어탕은 8천원, 간 추어탕이 7천원이다. 1년에 딱 한번 보름 동안 자연산 추어탕을 내놓기도 한다. 함평 등지에서 올라온 것들이란다. 그것은 1만원이다. 

 

메기불고기 같은 독특한 요리들도 차림표에 있다. 생선 메기를 잘 손질해서 불고기요리처럼 만든 것이다. 주차가 편한 것도 한 가지 장점이다. (02-557-8647)

 

4대째 옹고집 맛, 돌돌 말린 국수 먹는 재미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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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와 공덕동에 있는 <형제추어탕>은 들어가는 들머리에 커다란 흑백사진이 있다. 일본에는 100년 동안 대를 이은 맛집이 있다. 우리네 역사가 아픔이 많아서 100년간 맛을 지킨 집이 흔치는 않지만 얼추 그 정도의 시간을 품은 집들이 더러 있다. <형제추어탕>이 바로 그런 집이다. 4대째 옹골차게 맛에 대한 고집을 지켜왔다. 

 

들머리에 있는 사진에는 처음 추어탕 집을 연 1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한눈에 일본강점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식 가옥 앞에 웃지 않는 여러 명의 남자가 나란히 서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애잔한 기분이 든다. 이 방 저 방,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화려한 자개농은 따스한 느낌이 든다. 우리네 어머니의 숨결이 자개농 안에 살아있는 듯하다. 고풍스럽다. 때 묻어 더욱 향긋한 시간의 냄새가 추어탕만큼 솔솔 난다. 

 

이 집에서는 추어탕을 먹기 전에 '미꾸라지튀김'을 먼저 맛보는 게 좋다. 미꾸라지를 싸고 있는 튀김옷은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고 그 안에 연한 생선살들은 젤리처럼 쫄깃하다. 물김치를 얹어 먹으면 더 맛있다. 

 

곱게 갈아서 나오는 추어탕은 아주 고소하다. 두 눈 부릅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솜털 같은 작은 가루들이 한결같이 퍼져 있다. 주인이 손으로 직접 으깨서 만든 가루들이다. 

 

믹서기 같은 편리한 기계에 의존하는 집들도 많지만 이곳은 삶아서 직접 채에 얹혀 으깬다. 역시 손맛이 최고다. 

 

Untitled-3 copy 2.jpg국물을 입 안에 넣는 순간 된장 같은 구수한 맛이 첫 느낌으로 다가오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은 두 번째로 등장한다. 주인은 국물이 맛을 좌우한단다. 토종 된장을 쓰는 것이 비법 중에 비법이라고 말한다. 고소한 국물 안에 야채 얼갈이와 토란줄기가 온천에 놀러 온 사람들처럼 널브러져 있다. 오랫동안 끓여서 깔깔한 야채의 결이 없다. 부드럽다. 

 

<형제추어탕>은 밥도 주지만 돌돌 만 작은 국수도 준다. 국수를 먼저 넣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02-711-6680)

 

방귀쟁이 미꾸라지는 쌀쌀한 가을날 재미난 운동회처럼 갖가지 맛을 안고 있다. 한술 배부르게 먹고 나면 혼자서라도 열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줄다리기 선수가 된다. 어떤 먹을거리보다 불끈 힘 솟게 하는 데 최고다. 가을바람 불어 스산한 마음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이들, 추어탕 한 그릇으로 힘을 내보자. "인생 뭐 있수! "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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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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