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빵-과일·아이스크림 궁합 ‘사각사각’

박미향 2008.10.20
조회수 10147 추천수 0

[맛집순례] 와플집 <상> 강북
벨기에가 원조, 한국 어묵같은 ‘거리의 주전부리’
데이트족·여성 단골…커피와 함께 ‘수다’향 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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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에 있는 와플집인 <장명숙 갤러리 카페>

 

 바삭바삭한 껍질을 씹어 먹고 나면 그 안에 포근한 빵들이 내 안에 들어오고 토핑재료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면 그 궁합을 따져보는 큰 재미가 있는 요리. 와플(waffle)이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와플의 정의는 이렇다. ‘와플 굽는 틀 속에 밀가루, 달걀, 우유 등을 반죽한 것을 넣어 말랑하게 구운 케이크의 일종.’
 
 바둑판형 겉모양은 전쟁터 병사들 ‘작품’
 
 와플이 다른 종류의 빵과 다른 큰 특징은 바둑판형의 겉모양이다. 꿀벌집 같은 이 모양은 하루아침에 후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유럽 중세시대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당시 전쟁터에 불려나간 병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몇달씩을 그곳에서 견뎌내야 했다. 그릇 같은 살림살이까지 챙겨갈 수 없었던 병사들은 어떻게 음식을 익혀 먹을까 고심하던 끝에 방패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달궈진 방패 위에 밀가루 반죽을 뿌리고 다시 방패를 덮었다. 당시 방패모양이 지금 와플의 바둑무늬와 비슷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와플을 ‘고프르’(gaufrier)라고 부르는데, 고프르는 ‘방패 모양’이란 뜻이다.
 와플의 원조격인 나라는 벨기에다.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배고프면 살짝 천막 안으로 들어가 후딱 먹어치우는 어묵 같은 요리가 바로 벨기에의 와플이다. 그 나라에서는 골목과 거리 곳곳에서 와플의 달콤한 향이 넘친다.
 벨기에의 대중적인 요리, 와플은 1964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음식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이면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도 ‘마네켄’이라는 와플 체인점이 큰 인기다.
 와플에는 벨기에식 와플과 미국식 와플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벨기에식 와플은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반죽 덩어리에 달걀흰자를 넣어 구운 것인데 과일 등의 토핑이 올라간다. 미국식 와플은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반죽하고 시럽을 뿌려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희미한 옛사랑이 다시 찾아온 것같은 눅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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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하나둘씩 커다란 와플을 파는 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데이트족이나 여성들이 주고객이다. 와플만 파는 전문점보다는 볶은 커피와 차가 있는 수제 커피집에서 많이 판다. 
 종로구 소격동 <커피팩토리>가 대표적이다. 지하 공장을 예술적인 공간으로 변형시킨 곳 같다. 50m 전부터 이곳에서 파는 커피 향이 진동한다.
 이곳의 와플은 ‘팩토리 와플’, ‘따로 와플’과 ‘아이스크림 와플’ 세 가지다. ‘팩토리 와플’(사진)이 단연 인기다. 바삭바삭한 와플 위에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큼지막하게 토핑되어 있고, 스테이크처럼 칼과 포크로 잘라 먹어야 할 만큼 크다. 씹을 때마다 눈밭을 걷는 것처럼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똑딱똑딱 시간이 흘러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빵 사이로 스며들면 희미한 옛사랑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눅진한 감동이 든다.
 2008년 5월에 생긴 <커피팩토리>는 밀가루 반죽을 직접 이곳에서 하고 하루 정도 재워둔 후에 사용한다. 이른 아침 7시30분에 문을 연다. 매니저 한혁수씨는 “아침 일찍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말한다.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삼삼오오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예술품 눈맛 즐기고 야외 푸른 잔디 공간서 왕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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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숙 갤러리 카페>가 있는 가회동 거리


  가회동 거리를 걷다보면 쉽게 <장명숙 갤러리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관람하고 맛있는 차와 큰 바위 얼굴만큼 커다란 와플을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은쟁반 위에 올려진 우아한 접시, 그 위에 올라탄 와플. 과장해 말하자면 베르사이유 궁전의 왕비가 된 느낌이랄까?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펼쳐진 야외공간이 있어 더없이 좋다. 와플 한 점 떼어 먹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포근한 와플 맛을 따라 내 마음도 시름을 잊고 편안해진다. 함께 나오는 버터로 좀 더 다양한 와플 맛을 즐길 수 있다.
 광화문 <일민미술관>의 와플도 유명하다. 심지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커피팩토리>나 <장명숙 갤러리 카페>의 와플보다 크기는 작지만 도톰하다.
화려하고 기교가 복잡한 토핑보다는 소박한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이 올라간다. 인근 서점을 찾은 이들과 간단한 식사대용을 찾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02-2020-2055)
 우리는 살다가 문득 인생이 한없이 두렵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깨닫고 큰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와플의 맛이 그 위로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을까!

 글·사진 박미향 기자<한겨레>맛 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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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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