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그대 눈동자 불빛 삼아 맛있는 사랑을

박미향 2008.12.19
조회수 10377 추천수 0
송년회에 딱! ③
아담하고 등 낮아 서로의 얼굴만 가슴에 ‘쏙’
시간은 멈추고 소리마저 숨죽여 ‘곁’을 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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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자 친구와 함께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본다는 후배가 있었다. 매년 같은 내용의 발레가 무대에 올랐지만 그의 곁은 언제나 다른 여인네들로 채워졌다. 그가 바람둥이냐고?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순정남이다. 적은 월급에도 특별한 날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어린왕자’였다. 흡사 일본영화 전차남 (戰車男: A true love story:1995)의 주인공 야마다 타카유키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사랑의 패턴은 늘 똑같다.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새해에는 떡국을 먹으면서 여친을 떠나보내는 상처의 길. 습관은 욕망보다, 이상보다, 신념보다 더 집요하고 강하다. ‘호두까기청년’에게 해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는 새로 맞춘 양복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자 혹여 시련의 상처를 꿰매야하는 누더기가 될까 두려워하는 시간이다.
 
올해 그는 어떨까! 그 연애의 습관을 올해만은 제발 고쳤기를…. 그래서 올해는 연인들이 가면 딱 좋은 맛난 곳을 소풍가는 아이처럼 신나게 찾아 나서기를….
 
크리스마스만큼은 따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날이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음식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좋은 사람과 최고의 맛을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서로의 얼굴만 가슴에 쏙 들어오는 아담하고 등 낮은 집들을 골랐다. 마주보고 있는 ‘그대’의 눈동자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만큼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맛난 요리들이 식탁에서 응원해줄 것이다. 
 
* 빨간차고
뉘엿한 풍경 안주 삼아 신의 물방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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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의 로마네꽁띠를 만들었던 이가 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같은 삼청동에 새로 문을 연 와인바다. 실내가 온통 프랑스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창문을 열면 삼청동 언덕에 뉘엿뉘엿 누운 비스듬한 지붕들이 보인다. 맛있는 와인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함께 가기 좋은 집이다. ‘빨간차고’란 이름은 차고와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은 이름이란다. 차고와인은 프랑스 생떼밀리옹지역의 작은 규모의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차고처럼 작은 공간의 와인이란 뜻이다. 요리는 2만3천~3만5천원, 안주는 8천~4만2천원, 와인은 3만8천원부터다.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프랑스 와인들을 만날 수 있다. (02-3210-0543)
 
* 맘마키키
프랑스가 그대로…한쪽 벽엔 스페인도 ‘기웃’

 
이곳은 이미 낭만적인 와인바로 유명하다. 방배동 서래마을에 작은 프랑스를 옮겨놓은 것 같은 풍경을 담고 있다. 노란 등과 실루엣이 사랑의 낭만을 부추기고, 한 쪽 벽에 그려진 스페인 풍경도 볼 만하다. 이곳 여주인이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심상을 옮겨왔다.
 
연극인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와인, 치즈, 음악, 공짜 달걀(식탁 위에 삶은 달걀이 수북이 쌓여있다)이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요리는 9천원에서 2만5천원, 와인은 3만원부터 20만원 이상까지. (02-537-7912)
 
* 로코로카
에로스의 화살은 달짝지근한 라틴음악 타고
 
이태원에서 모래가 있는 술집으로 유명했던 ‘방갈로’의 주인이 만든 집이다. 원색적인 색과 달짝지근한 라틴음악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곳은 퓨전라틴 음식점이다. 독특한 피자와 케사디아가 인기다. 남미출신 요리사가 초창기 차림표를 짰다. 음식은 7천원에서 2만6천원이다. 맛난 음식 외에도 각종 와인들이 에로스의 화살이 된다. 와인은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산이 대부분이고 가격은 4만원에서 10만원 정도다. 잔 와인은 7천원~8천원인데 칠레산 말벡이나 아르헨티나 와인이다. 이밖에도 각종 칵테일이 요상한 풍경으로 사랑의 다리가 된다. 가격은 8천원이다. <로코로카>가 있는 골목은 이태원에서 이미 맛난 거리로 ‘뜬 골목’이다. 색다른 풍경의 맛집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02-796-1606)
 
* 태
어둑한 지하동굴, 심장이 ‘두두두두둥~’

 
13 copy.jpg서울 서대문구 창전동(연세대 앞)에 있는 술집 ‘태’는 연인과 정들기 좋은 집이다. 지하 동굴로 이어지는 듯한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벽에는 원시문양의 그림벽화가 있고 묘한 음악들이 귓가에 울린다. 심장의 박동을 조금씩 빠르게 하는 음악과 어둑한 조명은 금세라도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대’를 사랑하게 만든다. 맥주는 3천~5천원, 칵테일 4천~7천원, 안주 5천~6천원이다. (02-365-3824)
 
* 심스타파스
매력적인 낮은 천장, 여기저기서 ‘쨍! 쨍!’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있는 산뜻한 음식점이다. 낮은 천장은 오히려 불편하기보다는 매력적이다. 들머리를 지나 오른쪽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이 보인다. 믿음이 간다.
 
스파게티, 타파스, 샌드위치, 피자 등의 가격은 약 1만원에서 1만5천원이다. 두툼한 빵은 그 자체가 쫄깃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고기들도 덩달아 쫄깃하다. 양은 많지 않지만 음식들이 깔끔하고 맛나다. 이곳 잔 맥주는 한 두 잔 마시면 뱃속이 두둑할 정도로 진하다. 군데군데 다정한 연인들이 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한 잔 4천5백원에서 5천원이다. (02-3141-2386)
 
* 리탈리아미아
요리사들의 ‘마술’에 빠지면 지갑이 ‘홀쭉’
 
이탈리아 요리학교 아이씨아이에프(I.C.I.F.) 출신 요리사들이 마술을 부리는 압구정동 이탈리아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인 안드레아 주꼴로(31)와 김형래(34)요리사가 수석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형래 요리사는 신라호텔 출신이다. 김씨는 “한국적인 맛을 가미했다”고 말하지만 이탈리아 본토의 맛과 비슷하다.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가서 연인에게 근사한 저녁을 사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음식과 함께 마실 와인도 모두 이탈리아와인이다. 애피타이저는 1만6천원, 스파게티는 1만5천~2만5천원, 스테이크는 3만~4만원이다. 런치 세트메뉴는 2만5천원. (02-3442-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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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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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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