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돼지 샤브샤브, 비법을 전수받다

예종석 2008.08.11
조회수 8582 추천수 0

[예종석의 맛있는 집]  서울 북창동 ‘꺼멍도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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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 남단 규슈의 남쪽 끝에 자리잡은 가고시마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지만 돼지고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온후한 기후와 풍부한 고구마 사료를 먹인 흑돼지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서 환상의 흑돼지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특히 이곳 흑돼지는 일본 대표요리의 하나인 샤브샤브 재료로 사랑받고 있다.

 

샤브샤브는 ‘살짝살짝’ 또는 ‘찰랑찰랑’이란 뜻의 일본어 시늉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13세기 칭기즈칸이 대륙을 평정하여 몽고제국을 건설하던 시절, 야전에서 투구에 물을 끓여 얇게 썬 고기와 야채를 데쳐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쟁 중에는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 했기에 고기와 야채를 끓는 물에 함께 익혀 먹는 시간을 절약했다는 얘기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샤브샤브가 되었다. 한국 음식연구가들 중에는 우리의 전통 조리법에도 샤브샤브와 같은 조리방식의 음식이 있고 그것이 샤브샤브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토렴’이 바로 그것이다. 토렴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데우는 조리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바로 이 토렴이 고려시대에 몽고에 전해져서 칭기즈칸 요리로 발전했고 그것이 또 유럽으로 전해져 스위스의 ‘퐁듀’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임진왜란 때는 일본으로 전해져 샤브샤브가 되었다는 주장인데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 가고시마풍의 흑돼지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최근 서울에 문을 열었다. 북창동의 ‘꺼멍도새기’가 바로 그 집이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주인이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식당 미조리의 김계태 사장이라 믿고 추천할 수 있다. 빼어난 미식가이기도 한 김사장은 대를 이어 운영해 오던 일식집 ‘남강’의 문을 닫은 뒤 몇 해 준비 끝에 같은 자리에 ‘꺼멍도새기’를 열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가고시마를 드나들며 각고의 노력 끝에 현지의 유명식당 ‘겐지’(源氏)에서 샤브샤브 비법을 전수받았다. 흑돼지는 김 사장의 처가가 있는 제주도의 탐라목장에서 전량 생고기로 공급받는다. 제주 토종 흑돼지는 일반 돼지나 수입 흑돼지보다 사육기간이 길고 새끼도 적게 낳아서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나 맛은 뛰어나다. 

 

메뉴는 샤브샤브 외에도 통갈비 삼겹살·오겹살·목등심·항정살 구이가 있으며, 가격은 한 사람분에 1만2000원~1만5000원이다. 점심 스페셜은 샤브샤브에다 우동과 알밥까지 포함해서 9900원 받는다. 구이는 전부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제거하는 참숯 훈제 초벌구이 기법을 쓴다. 그 외에 한 시간 전에 예약해야 하는 흑돈 돔베고기(1만5000원)와 제주족발(2만원)이 있으며, 식사로는 김치찌개(6000원)와 김치우동(3000원)이 있다. 샤브샤브와 우동의 면은 자매점인 우동명가 ‘석정’의 것을 쓴다. 실내 장식도 산뜻하고 포도주도 시중보다 싼값에 공급해서 데이트나 손님 접대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전화번호 02)778-1141.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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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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