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파스타, 시칠리아의 그 맛

예종석 2008.09.24
조회수 7970 추천수 0
[예종석의 맛있는 집] 서울 대치동의 그란구스또
 

 

Untitled-1 copy.jpg이탈리아에는 “이탤리언 요리는 없고 향토 요리뿐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의 지역별 특성이 강하다. 로마 제국이 분열한 뒤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에게 점령되었고, 그 영향은 각 지역의 특성과 맞물려서 지방마다 고유의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음식은 지역별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크게는 남부와 북부로 나눌 수 있다. 일찍이 산업화된 북부 지방은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농업이 발달해 쌀이 풍부하며 버터와 치즈 같은 유제품도 다양하게 생산된다. 경제적으로 침체된 남부 지방은 올리브와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들이 유명하고 해산물이 풍부해 이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북부 요리와 남부 요리는 파스타의 종류, 요리에 쓰이는 기름, 디저트와 소스에서도 차이가 크다.

 

남부 시칠리아 사람들은 근해에서 많이 나는 안초비나 정어리 등을 넣은 파스타를 흔히 해 먹는다. 생선이라 비릴 것 같지만 조금도 비리지 않으며 뜻밖으로 그 맛이 일품이다. 오래전에 시칠리아에서 먹었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정어리파스타의 맛을 지금까지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에 그런 시칠리아풍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아쉬움을 달래준다. 서울 대치동의 그란구스또가 바로 그 집이다. 그란구스또의 명물은 고등어와 멸치, 멍게 들을 재료로 한 해산물 파스타이며 그 맛이 시칠리아의 그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 맛의 비결은 이 집의 주인이자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경태 조리이사(52)의 음식으로 점철된 인생 역정의 소산이다.

 

이경태 씨는 미국에서 MBA학위까지 받은, 주방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요리사의 꿈을 키워 온 사람이다. 유학 시절에도 음식점을 수없이 드나들며 음식 공부를 했고 귀국한 뒤에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도 늘 사무실 한 귀퉁이에는 주방을 만들어 놓고 요리 연구에 정진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됐다 싶어 식당을 위한 아름다운 건물부터 짓고 3년 전에 개업한 곳이 바로 그란구스또이다.

 

yeah.jpg요리에 뜻을 세우고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한 끝에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식당 문을 연 것이다. 그의 음식에는 그러한 연륜이 묻어 있다. 그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풍모는 뉴욕 최고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밥보’의 오너셰프 마리오 바탈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한국의 마리오 바탈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음식은 재료와 정성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이경태씨는 지금도 새벽마다 손수 장을 보며 대부분의 음식도 요리한다.

 

각종 파스타(1만8000원) 외에도 점심 1만9000원, 저녁 3만5000원부터 시작하는 다양한 코스 메뉴가 준비되어 있으며, 가격도 동급 레스토랑에 견주면 저렴한 편이다. 2층은 와인바도 겸하고 있어 와인도 고루 갖추고 있다. 대치사거리 근처이며 전화번호는 (02)556-3960이다.

 

예종석 /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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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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