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 떡 벌어지는 진짜 한정식

예종석 2008.09.24
조회수 9376 추천수 0

[예종석의 맛있는 집] 전남 순천 대원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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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은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은 70만평에 이르는 갈대밭과 개펄로 나그네들을 압도한다. 이른 새벽의 대대포구에는 일찍이 작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같이 빙 둘러싼다”고 했던 물안개가 무성한 갈대밭 위로 아른거린다. 그곳은 문자 그대로 안개나루(霧津)다. 먼동이 틀 무렵 포구 건너편의 화포마을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끝없는 갈대밭을 금빛 물결로 출렁이게 하는 와온마을의 일몰은 숨을 멈추게 하는 장관이다. 가을이면 40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개펄을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칠면초가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흑두루미와 황새, 저어새 등 200여종의 희귀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 밖에도 순천에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승보사찰 송광사와 태고종의 총본산인 선암사가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1500년 전 마한 시대에 조성된 낙안읍성이 자리 잡은 곳이다. 이렇듯 볼거리가 많은 순천을 더욱 빛내는 것은 바로 다양한 먹을거리다. 옛날부터 ‘동 순천 서 강진’이라고 할 정도로 순천은 맛의 고장이고 그러한 순천을 대표하는 식당이 바로 대원식당이다. 대원식당의 한정식은 요즘 서울에서 흔히 보는 쫀쫀한 퓨전 한정식이 아니다.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다 주는 옛날식 한정식이다. 그런데 그 많은 음식 중에 버릴 것이 하나 없다. 오래 전부터 1인분에 15000원 받는 기본상에 올라오는 음식 한 가지 한 가지가 전문점 솜씨를 뺨치고도 남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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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남도의 식당답게 묵히고 삭힌 반찬이 기본이다. 다섯 번 끓여 부었다는 진석화젓은 간간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긴다. 게장이나 전어밤젓은 그것만 가지고도 밥 몇 그릇은 후딱 해치울 수 있는 맛이고, 대갱이무침은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 생김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입에 달라붙는다. 큼지막한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지진 고등어조림은 한동안 다른 반찬에 손이 가질 않게 하는데다 주꾸미구이는 이를 쓸 틈을 안 줄 정도로 부드럽다. 꾸들꾸들 말린 양태찜은 다른 데서는 먹어 보지 못한 요리고, 철에 따라 2만원 내외면 추가할 수 있는 서대회무침이나 홍어애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맛이다. 재수 좋은 날에는 예로부터 ‘일 능이, 이 송이, 삼 표고’라고 한다는 능이찌개를 얻어먹을 수도 있다. 대를 물려 식당을 경영하는 이혜숙 사장은 유난히 음식 재료에 집착이 강하다. 고추장아찌는 지금도 꼭 홍천에서 아삭이고추를 사 와서 담그고, 꼬막은 벌교 참꼬막만을 고집한다. 된장국도 그냥 우거지가 아닌 엉겅퀴와 여린 고사리, 제보 등을 넣어 끓인다. 이 사장이 시키는 대로 열무 잎에 삼겹살구이 한 쪽과 졸인 찔룩게 한 마리를 얹어 먹으면 입이 천국이 된다. 순천 시내 시네마극장 근처이며, 전화번호는 (061)744-3582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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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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