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선물]세상 어디에도 없는 감자볶음

조회수 8663 추천수 0 2013.03.14 13:00:24

언젠가 아들 녀석이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엄마, 우리는 세상의 빛과...어..감자래요..”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이후 나를 ‘럭셔리 감자’로 불러주었다. 가난하고 찌질하지만 폼나게 살고 싶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더니 사람들이 아들 녀석의 ‘빛과 감자’와 나의 속물근성을 잘 배치하여 ‘럭셔리 감자’로 부른 것이다.

감자농사를 한 것도 아닌데 유난히 감자 반찬 도시락을 많이 먹었다. 생각해보니 가난한 경상도 산골에서 그나마 도시락 반찬으로 남 우세스럽지 않은게 감자여서 그랬던 것같다. 무료급식도 되지 않던 빈한한 그 때, 도시락이라는 이름보다는 ‘벤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던 그것을 절그럭거리며 들고 가서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교실엔 오색창연한 냄새들이 가득찼고 우린 배움에의 열정보다는 배고픔에의 집착만을 부풀려가곤 했다. 배고픔이 반찬이 되던 가난한 시절이어서 그랬나? 내 반찬은 늘 김치 아니면 감자볶음이었다. 그럼에도 간혹 어떤 아이들은 계란후라이도 싸오고 오징어채볶음, 멸치볶음도 싸오곤 했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아이들이 나는 통 맛볼 수 없었던 그런 다른 ‘볶음’ 반찬을 싸올 때면 자존심과 욕망 사이에서 늘 하나만 달라고 할까 말까를 수없이 반복하며 침을 꼴깍 삼키다 새삼 엄마가 막, 급하게 싸주신 감자반찬이 꼭 잘난척하려는 내 모습을 비웃는 것같아 웬지모를 심통도 나곤 했다.

거의 초등학교 6년을 감자볶음은 그렇게 나와 함께 했다. 우리집의 가난을 드러내는 감자볶음은 그러나 내 입맛엔 아주 잘 맞았던 모양이다. 질리지도 않고 먹었던 걸 보면.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나는 이제 더 이상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복지국가의 시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통 그 감자볶음 맛을 낼 수 없다. 엄마가 해준, 지겨움과 그리움의 합성인 그 감자볶음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가끔 감자를 볶아 주시는 엄마는 “나이가 드니 반찬이 자꾸 짜진다”고 걱정하시며 그 오래된 볶음의 역사에 누를 끼칠까 심히 저어하시는 모습이다. 나도 내심 ‘그 맛이 아닌데, 제 점수는요 60초 후에 공개합니다’는 심정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감자볶음을 그리워한다.

오늘 나는 호미가 사정없이 내리 꽂혀 생채기가 난 감자도 마다하지 않고 감자밖에 싸 줄 수 없었던 엄마의 눈물과 한숨을 생각하며 감자를 볶아 볼 짬이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볶는 그 감자가 혹여 예전 그 맛을 보여준다면 나도 이젠 ‘자식을 폼나게 살게 하고 싶었으나 여전히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자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된 자의 무력함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tov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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