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맛을 타고 -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요리하기>

 

식구(食口)란 한자어에도 나와 있듯이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기에 유독 먹는 것에 대한 추억으로 이야기꺼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친정 식구들.

우리 3남매 중 둘째 여동생을 제외하고 다른 추억의 맛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를 만나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친정에 가면 친정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제일 맛이 있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추억이 있어 음식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2004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과 나,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연년생 딸, 우리 네 식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남 함양 백전 산골로 귀농을 했더랬다. 그 전까지 우리 가족의 생활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어느새 식탁위에는 엄마가 지하철타고 날라다 주시는 김치와 밑반찬, 퇴근길에 마트에서 사온 반 조리되어 있는 상태의 요리가 대세였지만 귀농과 동시에 순식간에 모든 생활이 변했다. 심지어는 아침부터 저녁, 밤까지 종종거리며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냥 ‘아고고’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그 일이란 대부분 나와 우리 가족들의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키우고 만지고 다듬고 갈무리를 하는 것들이었다.

한동안 정말 심각하게 배고픈 소크라테스마냥 고민을 했었다. 아~ 살기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물론 내려진 결론은 없었다. 1시간여 산을 오르내리며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집에 오자마자 배고프다고 소리치면 밭에 나가 금방 뜯어 온 신선한 무공해 제철 작물로 간식을 챙겨주고 다시 행복해 하는 시간에 밀려나기 일쑤였으니까. 그러다가 동네 언니가 알려준 신기한 요리가 있었다. 바로 지천에 널린 야채들을 채 썰고 뭔가 빳빳한 천처럼 생긴 것을 물에 담궈 그 야채들을 양껏 넣고 말아 싸서 먹던 음식. “월남쌈”

월남쌈을 그렇게 만났다. 마트에서 소스를 사와서 찍어 먹어보기도 하고 쌈 재료에 큰 맘 먹고 고기를 넣어 먹어 보아도 맨 처음 먹었던 갖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월남쌈이 최고였다. 물론 우리식의 된장 소스와 고추장 소스를 첨가 했기에 더욱 맛이 났지만.

그러다 2007년 10월. 아버지가 전립선 암으로 수술을 하시고, 이어 2009년 2월. 어머니가 갑상선 암으로 다시 입원을 하시면서 서울과 떨어진 거리가 있어 간병을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큰 딸로서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께 좋은 음식으로 내가 두 분께 받은 사랑과 은혜에 보답을 해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처지가 여의치 않아 간절한 마음만큼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암 환자들이 섭취해야 하는 음식에 신선한 채소와 거친 음식들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직접 무공해로 키우는 야채들과 귀농 첫 해 동네 할머니들게 물어물어 직접 담아 어느새 5년이 넘은 국 간장, 된장을 싸들고 예전에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면 하시던 대로 나도 서울행 버스를 탔고, 그날 밤 우리 집에 그 때 그 순간처럼 정성을 요리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었다.

참, 에피소드 하나.

그날 저녁 신선한 야채를 채썰어 색색으로 둥글게 담는 것을 보시고는 “구절판은 손이 많이 가는데 뭘 그런 걸 해서 먹냐 그냥 있는 거 먹자” 하시더니 월남쌈을 적실 미지근한 물을 대접에 담아 상위에 놓으니 “먹는 물 아니지! 이거? 그 영화에서 보니 외국에선 여기다 손 씻던데 우리 손 다 씻었다!” 하시고, 빳빳한 정체불명의 것을 보고는 냄새도 맡아보시고 손으로 끝에는 잘라 먹어 보시며 아무 맛도 없다, 어쩌다 하시며 두 분이 나름 이 음식들의 정체를 궁금해 하셨다.

이어 준비를 마치고 월남쌈을 물에 살짝 담궈 건진 뒤 그 위에 야채들과 직접 만들어낸 간장, 된장 소스를 바르고 싸서 먹는 시범을 보여드리니, 마치 소년 소녀처럼 두 분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이시더니 정말 멋있게 금방 만들어 드시며 만족해 하셨다.

그 후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동창 모임에 가시거나 친구 분들이 집에 방문하시면 손님 접대 요리로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야채 월남쌈을 적극 추천하시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병문안을 가시면서도 건강식에 입맛을 살린다고 우겨 보온병에 적당한 온도의 물까지 가지고 가셔서 즉석에서 월남쌈을 싸 아픈 분 입에 꼭 한 입 물려 주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듯 한다. 물론 “얘, 그 월남쌈 소스는 어찌 만드냐?” 라셔서 “엄마 거기 냉장고 안에 유리병에 만들어 놓은 거 쓰세요”라 했다. 아직 소스의 비결은 알려드리지 못했지만 엄마의 손안에서 새로운 정성과 요리로 거듭나는 월남쌈을 보면서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퇴근하셔서 돌아오시면 요술쟁이처럼 엄마의 손에 의해 금방 집안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바삭바삭 구운 김, 먹음직스런 김치에 그 날 있었던 이야기로 웃음이 가득했던 그 시절 그 맛이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나도 모르게 행복해졌다. 그러니까 엄마의 밥 힘 으로 오늘도 힘들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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