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같이 파란 맛, 초록처럼 푸른 맛

조회수 7505 추천수 0 2012.01.18 22:29:53

하늘같이 파란 맛, 초록처럼 푸른 맛

 

그날 하늘은 파랬다. 눈이 시리다는 말이 서러울 정도로 하늘에는 백옥보다 더 하얀 솜사탕 흰 구름이 파란 도화지 위를 자유로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공원을 찾은 그 날은 싱그러운 초록들이 한껏 자신들 만의 푸름을 뽐내고 있었다.

 

토론토의 산소 탱크, 써니부룩 공원. 오는 이 마다않고 가는 이 잡지 않는 공원은 찾는 이에게 늘 생활의 여유로움을 갖도록 도와준다. 특별히 도시의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는 도시공원은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나보다.

 

그해 여름은 바빴다. 특별히 이민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친척들의 방문은 바쁨을 더해주는 아주 반가운 행사다. 더구나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조카들의 방문은 어른들인 이모와 이모부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때 마침 와 있던 영어영문학과 어학연수생이 조카들과 언니 동생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건, 뜻하지 않은 관계의 보너스였다. 그해 그 여름, 파란 하늘에 흰 구름 자유로이 하늘을 떠놀던 그날, 우리는 푸르른 하늘 구름의 손짓에 못 이겨 계획에 없던 공원행을 결행하였다.

 

이모부인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고, 이모인 아내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닭갈비를 급조해 냈다. 조카 둘, 어학연수생 하나, 그리고 우리 식구 넷이 스테이션 왜건에 몸을 싣고 써니부룩 공원으로 향했다.

 

푸르디 푸른 잔디 위를 날아다니는 노란 비행접시(Frisbee), 모두가 한 몸 한 식구가 되어 야구, 배구, 축구 등 종목 가릴 것 없이 함께 뛰어 놀았다. 한 시간 반 남짓 그렇게 지냈을까? 갑자기 하늘에 뭉게뭉게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보슬보슬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챙겨온 짐들을 가져온 그대로 정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이미 굽기 시작한 이동식 가스 그릴에 얹어놓은 닭갈비는 어쩌란 말인가!

 

보슬보슬 내리던 이슬비는 어느 새 부슬비로 바뀌더니, 이제는 투덕투덕 제법 방울이 굵어졌다. 뚜껑을 덮어놓은 가스 그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제법 소리를 낸다.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눈총이 여간 따갑지가 않다. “과연 닭갈비를 먹을 수 있으려나?”하는 눈초리들이다. 아이들은 차안으로 몸을 피하는 동안 나는 스테이션 왜건의 장점을 살려 모든 의자를 평상으로 만들었다. 그곳에 깔아놓은 야외용 돗자리는 제법 분위기를 연출했다. 알록달록한 야외용 돗자리에 펼쳐진 먹거리들을 보니 이건 급조한 것이라 여겨지지 않으리만큼 풍성했다. 근처 한국식품점에서 구한 깻잎과 싱그런 고추 등 제철 야채들은 이내 올라올 닭갈비에 쌈장을 발라 몸을 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닭갈비였다. 한껏 뛰어 논 뒤라 닭갈비가 튀어 오르기만 하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하지만, 빗방울 튀기는 가스 그릴 위의 뿌연 연기는 모든 이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되었다 싶어 뚜껑을 열었다. 도심에 위치한 공원의 후미진 곳에 주차를 하고, 해치백 문을 열어놓고 대여섯 아이들이 차에 웅크리고 앉아 맞이하게 된 닭갈비는 뜻밖의 별미를 연출해 냈다. 그럭저럭 맞아도 될 만한 빗줄기에, 푸르른 잔디위의 하얀 자동차 안에서 서로의 웃음을 보며, 서로의 배려를 느껴가며, 빗속에서 먹었던 닭갈비는 계획되지 않은 맛까지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그 때 그 닭갈비의 맛은 그 어느 곳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환상의 맛이요, 신비한 맛이었다. 거기에 앉았던 여덟 사람들이 이전에도 먹어보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먹어볼 수 없는 최상의 맛이었다.

 

아마도 가스 그릴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갑자기 빗방울이 뚜껑을 식혀주며 오묘한 맛이 창조되었던 것 같다. 그 날 그 공원에서 먹었던 그 닭갈비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 날씨가 연출해 준 자연의 선물이었으리라. 모두가 함께 어우러졌던 그 예쁜 마음, 먹는 것이라면 지성을 다하는 엄마이자 이모의 정성어린 손길, 아이들의 밝은 마음, 그리고 사람이 도저히 창출해 낼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만들어낸 파랗고 푸른 맛이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어떤 사진작가의 눈앞에 자연만이 연출해 줄 수 있는 멋진 작품 소재가 펼쳐졌다. 문득 나선 가을 날 산행에서 한 떼의 새들이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는 데,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막힌 구도와 날씨와 장면이 연출되었다. 프로인지라 얼른 사진기를 장전했는데 아뿔싸! 필름이 막판이라 새 필름을 갈아 넣어야 했다. 마음이 급해진 작가는 전문가의 솜씨로 새로운 필름을 실수 없이 장전하였다. 그러나 그 몇 초 안되는 짧은 순간 그의 앞에 펼쳐졌던 천상의 장면은 그만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 장면을 잊지 못하던 그 작가는 매년 그맘때면 그 산 그 골짜기를 찾아가는데, 날씨며, 명암이며, 새들의 움직임은 다시금 만들어지지 않았다. 작가는 그 후로 10년 동안 그 곳을 찾았지만, 그 장면은 다시 연출되지 않았다.

 

공원에서 보았던 그 맛. 그 한 순간의 경험은 맛이란 입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코로도 먹고 눈으로도 그릴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 준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급조한 그 공원의 그 닭갈비. 그 파랗고 푸르른 맛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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