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 (나마스떼, 네팔씨!)

조회수 7446 추천수 0 2012.01.11 12:36:07

<나마스떼, 네팔씨!>

우락부락한 이목구비와 건장한 체구, 튼실한 팔뚝에 요상한 문신까지... 날로 험악해지는 세상에 노부모를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무거움으로 대문을 쉬이 열지 못하던 그 해 명절,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낯선 외국인에 모두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횡행한 추측과 두려움이 몰려오며 신문 사회면을 달구는 외국인 범죄로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낯선 이방인 뒤에서 노쇠한 친정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내미셨다. 그야말로 ‘별일’이었다. 오래된 소규모 의류 하청업체들이 몰려있는 친정 동네에 언젠가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친정 지하에도 그런 이들이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네팔’씨와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 때, ‘하르머니!’를 외치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수줍게 차려낸 접시 두 개. 그것이 생애 처음 접하게 된 네팔 민속 음식이란 것이었다. 우리네로 치면 튀김의 일종인데, 마치 꽈배기처럼 둥글게 여럿 꼬아서 짙은 갈색으로 튀겨낸 것과 이에 곁들인 오이 무침. 이국의 강한 향신료가 조금은 거북도 한 양념에 오이를 깍둑썰기로 묻혀 낸 일종의 샐러드였다. 튀김은 찹쌀가루처럼 끈기도 있고 고소한 맛이 꽤나 괜찮았고, 오이 무침은 대학을 갓 졸업한 조카 녀석의 세련된 미각에만 맞는 듯했다.

아직도 경계를 풀지 못하는 자식들 뒤로 엄마는 갖가지 명절 음식에 홍삼, 비타민까지 아깝지 않게 한가득 상자에 담으셨다. 그러고는 따라오라 하셨다. 지하방에 노크를 하니, ‘네팔’씨와 그의 부인인 듯한 여인이 나왔다.

친정 어머니 : “우리 딸(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팔씨 : “...?”(전혀 못 알아들은 표정으로 목례를 하며)

친정 어머니 : “이거(손으로 떠 먹는 시늉을 하시며)!”

네팔씨 : “하르머니, 좋아!”(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이들 간의 기가 막힌 소통, 가히 커뮤니케이션의 혁명과도 같았다.

기억이 많이 흐릿해져 자식들 이름조차 제때 부르지 못하시는 아버지와 전기나 집안 보수 같은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이미 힘겨운 도전이기도 했다. 꼭두새벽에 전화해 세탁기가 안돌아가니 어떡하느냐, TV가 고장났는지 연기가 나서 무섭다, 괘종시계가 딱 서서 움직이질 않는다등등... 바로 달려갈 수 없는 거리이다 보니 전화로 두 번 세 번 다짐을 하고 하루 시간내 부모님의 민원을 해결하곤 했었다.

언젠가부터 깜짝 놀랄 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잡다한 일상의 문제들이 한 번에 사라질 리가 없었는데도 내심은 부모님의 안위에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전등이 깜빡거려도, 건전지가 닳아 작동하지 않아도, 전화기가 고장나도,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도 친정 아버지는 ‘네팔아!’하고 외치신다고 했다. 그러면 정말 싫어하는 내색 한 번 없이 지하의 외국인은 ‘하르버지, 하르머니’ 밖엔 구사하지 못하면서도 늘 번개 같은 속도로 올라와 해결해주었다고 하셨다.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다급함과 착한 네팔씨의 인류애가 만나 불가능할 것 같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미안했고 너무 고마웠다. 늘 곁에 있으면서 부를 때마다 씩씩하게 달려와주는 ‘네팔씨’는 이미 큰 아들이고, 손주이고, 해결사일터다. 이국에서의 삶도 그리 녹록치 않을 텐데 주인 하르버지의 절박함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그 마음은 이미 가족이었다.

올 명절엔 반드시 네팔어로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그가 대접해준 오이 무침을 맛있게 비워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시 채워 따뜻하게 건네줄 것이다.

네팔씨, 정말 고마워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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