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파래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가는 시기이지만 3월까지만 해도 파래는 맛이나 향에서나 색깔에서나 겨울밥상을 빛내주는 일품 식재료다. 아내가 파래를 사오는 날이면 나는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파래구이에 대한 향수에 빠지곤 한다. 물론 아내는 우리집 식구들이 ‘파래갈비’라고 부르던 파래구이보다는 식초를 약간 가미한 새콤달콤한 파래무침에 익숙해져있는 도시 출신이다. 아내의 음식솜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이어서 한번은 어릴적 먹었던 그 맛의 추억을 되살려 파래구이를 코치해봤는데 미안하지만 그 맛이 영 아니어서 그 뒤론 아예 부탁을 포기해버렸다. 하긴 맛을 좌우하는 주재료인 된장 맛이나 구워내는 방식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겸 아내를 변호해보지만 아쉬운 맘이 남는 건 사실이다.
아내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된장으로 간을 하는 것이었고 구이수단도 가스렌지 위 프라이팬이어서 어머니의 그 맛과는 현저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을텐데 내가 너무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그럼 여기에서 그 된장파래구이를 여러분께 소개하니 한번 시도해보시고 성공하시기를 빈다. 남자들은 결혼을 해서도 평생 어머니가 담은 김치나 된장의 맛을 잊지못한다 하는데 나 또한 내 어머니께서 담그신 된장 맛을 50을 훌쩍 넘긴 이날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맛있는 된장으로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별미로 파래된장구이를 해주셨다. 파래의 종류는 남자인 내가 아는 짧은 상식으로 국을 끓여먹는 것으로 유명한 메생이가 있고 약간 넓이감이 있는 일반 무침용 파래가 있고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생긴 감태가 있는데 특히 감태는 다른 양념 필요없이 조선장에 주물러서 재워뒀다가 두고 먹으면 익을수록 맛이 나는 파래이다. 어머니께서 구워주신 파래는 감태였다. 그 감태파래를 꾸욱 짜 물기를 없앤 뒤 된장에 버무르고 거기에 참기름과 약간의 마늘, 깨소금을 넣어 간이 배도록 주무른 후 그것을 대나무꼬챙이에 둘둘 말아 석쇠에 올려 미리 지펴둔 숯불에 올려놓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파래갈비’가 완성되는데 말이지만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다. (대나무를 쓰는 이유는 일반 나무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없기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독자여러분께서는 양념한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말아 구워먹는 것을 상상해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 파래구이를 위엄 있으신 아버지와 오남매가 한상에 둘러앉아 먹을라치면 절대 아버지보다 먼저 젓가락이 가서는 안되고, 아버지가 드신 후에도 큰형님, 큰누나, 작은형님, 작은누나까지 거쳐 막내인 내 차례가 되었다. 그 차례까지 기다려야했던 나의 처절한 기다림의 아픔(?)을 어머니께서 눈치채시고 “내 강아지 얼렁 묵소!”하며 밥위에 얹어주시던 그 사랑이 보태졌기에 그 맛은 형님 누나들보다는 내 가슴과 머릿속에 더욱 진하게 남아있을게다. 지금은 관절염으로 열손가락마디가 다 굽어버린 어머니의 손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만, 할수만 있다면 막내의 특권으로 어리광을 부려 다시한번 어머니의 그 맛을 느끼고 싶다. 내일은 시장에 들러 제 철은 아니지만 아직 들어가지 않은 감태가 있다면 사가지고 어머니께로 가볼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