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선물>생일 맞이 소고기미역국

조회수 17195 추천수 0 2013.04.19 09:50:07
 

Q. 다음 소고기 미역국에 들어간 것은?

  

미역만 들어간 기본 미역국, 바지락 미역국, 북어 미역국까지 다 만들어 봤으나 어쩐지 늘 소고기 미역국은 자신이 없었다. 이 세상 가장 맛있는 소고기 미역국은 외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그 때 그 맛으로 기억하고 싶기도 했거니와 맑은 국물에 참기름을 띄우는 요리 과정이 어쩐지 느끼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담백한 인생을 살자고 다짐한 터였음은 둘째 치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일은 왔고 나는 자연스레 의무감 반, 도전정신 반으로 무장하여 냉동실에서 떨고 있던 소고기 반근을 구했다.

 

 가장 먼저 핏물을 빼야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을 우습게 여기고 대략 오 분 정도만 물에 담가뒀는데 제법 핏기가 빠진 것 같아 참기름과 마늘 간을 한 다음 프라이팬에 달달 볶았다. 어느 정도 익었다고 판단하고선 가위로 자르려고 하는데 고래 심줄처럼 질기고 질긴 소고기는 오 분을 씨름해도 살점 하나를 허락지 않았다. 그대로 포기할 순 없어 조금 더 들들 볶은 다음에 다시 가위질을 시도했지만 차라리 가위로 프라이팬을 자르는 게 더 쉬워보였다.

 원인을 생각해보자. 그래, 이유를 생각해 보는거야. 그래야 결과가 바뀐댔어. 애먼 소고기 겉면만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혼자 탁상공론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 모든 것은 피와 상관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이미 달궈질 대로 달궈진 소고기를 꺼내 다시금 찬물에 입수시켰다. 사람도 목욕탕에서 온탕, 냉탕 왔다 갔다 하면 탄력과 건강을 되찾는 판국에 소고기라고 안 될게 뭐야?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한 거고, 어쨌든 매우 서툴게 뒷수습을 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얼마간의 금쪽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찬물이 핏물로 바뀐 걸 확인한 후, 소고기를 꺼내 입으로 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바로 그 프라이팬에 한 번 더 컴백시켰다. 과연, 소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가위질을 재기하자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조각이 났다.

어느 정도 소고기와의 관계가 성공적으로 끝나가는 듯 보이자 잊고 있던 미역국이 생각났다. 나는 지금 소고기 구이와 미역국을 만드는 레시피를 동시 진행하고 있던 게 아니라 소고기 미역국 단 하나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육수를 만들어야 했다. 반드시 깊고 진한 맛을 내야하는 육수는 사실 소고기 미역국을 만드는 것에 있어 가장 쉬운 것 중 하나다. 단, 냉장고에 기본적으로 멸치, 대파 다듬은 것, 고추만 구비되어 있다면. 다행히 냉장고는 위에 나열한 세 가지들을 파멸시키지 않은 채 보존하고 있었다.

육수가 끓는 동안, 마른 미역은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라운 번식력으로 불어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찰나. 소고기 미역국에 있어 소고기보다 더 중요한 국간장이 동났음을 요리가 완성될 무렵에서야 알아버렸다. 모든 일에는 차선책이 있었지만 국간장 만큼은 그 어떤 소스도 대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채 임기응변의 소고기 미역국은 속절없이 팔팔 끓었다. 국간장 없이 어떻게 미역국을 완성했는가의 진실은 오로지 입 안의 혀에게만 허락하기로 한다.


 이제 다신 누군가를 위해서도 소고기 미역국만큼은 끓이지 않을 것이라는 배려심을 품은 채 당연히 오늘의 주방장 자격으로 내가 먼저 소고기 미역국 한 사발을 밥에 말아먹었음을 밝혀둔다. 밥을 말면 물조차 고소하다는 사실을 소싯적부터 알게 해준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아무튼, 그것이 누구라도 오늘 생일을 맞은 자, 모두 축하하는 바. 부디 밥 잘 챙겨먹고 다니시라.


A. 정성

 

 

 

이름:김지희

연락처:jh-enig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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