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정도 였다.
봄인지 늦겨울인지 알 수 없는 날씨탓에 주변에 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늘 환절기 알러지에 시달리시는 친정아버지가 생각나 평소 하지 않던 전화를 드렸다.
친정어머니가 1월에 쓰러지셔서 퇴원하신지 두달정도 되어 언니한테 병간호를 받고 계셨고 아버지는 혼자 과천에서 생활하시니 식구들은 친정어머니 찾아 뵈느라 아버지는 뜸했던 터였다.
여든 셋이 되신 체력으로 아내를 보고싶어 왔다가도 하루 주무시고 과천으로 옮겨다니는 잠자리와 들쑥 날쑥한 기온이 몸상태를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고 일주일이 넘게 기침과 콧물에 시달리신 모양이었다.
" 아버지 제가 과천 근처에 갈일이 있어요. 내일 들릴께요. 그 때 같이 뵙고 저녁식사해요."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 그래... 그렇다면 고맙지."
사실 근처에 일은 없었다. 아버지뵈러 가고 싶어서 였고 부실한 식사때문에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가 싶어 반찬 몇가지 해가지고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장날이었다. 양평장은 3일 8일 서니까 38장이라고들 말한다.
봄나물을 빨간 동이에 수북히 쌓아 놓고 파는 아줌마 할머니들이 이곳 저곳에서 계셨다.
지난번 식구끼리 해서 먹은 달래무침이 맛있길래 달래를 일단 한소쿠리 샀다. 마트에서 파는 고무줄에 목이 조여 묶여있는 달래가 아닌 엉클어진 머리카락같이 크기도 제각각인 달래들이다. 다듬는게 일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 드리고픈 마음에 삼천원어치를 사는데 한주먹을 더 얹어 주신다. 다듬을 생각을 하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덤이니 흐믓했다. 그리고 돌아서니 자잔하게 한 소쿠리 놓여 있는 잎이 있다. 이건 뭘까? 싶어 물어보니 홑잎이란다. 솔직히 그 전엔 모르는 나물은 사서 먹어보지 않았는데 엄청 맛있다는 말에 한소쿠리를 사고 빠질 수 없는 취도 샀다.
밤새 다듬고 다음날 아침 열심히 씻어 데치고 무치고 오전 내 나물과 씨름했다.
살때는 한봉지인데 무처 놓으니 두주먹도 안된다.
데치는 끝에 여러 나물을 데처 놓으면 다듬는 일만 빼면 별로 힘들게 없다. 그만큼 주부 관록이 붙은 모양이다.
취나물은 데쳐서 볶고 홑잎나물은 데쳐서 간장, 파, 마늘, 참기름과 들기름 섞어 참깨에 조물 조물 뭍혔다. 약간 달달한 맛이 나며 봄철 나물들이 내는 특유의 쓴맛이 나지 않아 아이들도 맛있게 먹으니 아버지도 좋아할 듯 싶었다.
취나물은 같은 양념에 들깨를 넣어 쌉싸름한 맛을 좀 덜느끼게 했는데 성공한 것 같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일찍 취나물을 사니 연해서 그랬나 싶은데 아마도 그만큼 경험이 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달래는 내가 담근 매실액과 간장과 고춧가루만 넣고 뭍혔다. 별 양념아니지만 새콤 달콤 한 맛과 톡쏘는 달래향을 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일찌기 담가놓은 파김치도 한 그릇 덜어 담고 취나물, 홑잎나물, 달래 무침을 피크닉 도시락에 모양껏 담았다.
그리고 먼저 재 놓은 코다리 찜을 남은 찬압에 넣었다.
밥만 담고 그데로 소풍가도 될거 같은 느낌?
고기 좋아하시는 아버지 입맛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봄철에는 봄에 나는 나물을 먹어야 할것만 같은 내 건강챙기기 비법을 받아주시면 감기가 떨어질거라 믿고 둘째 딸아이를 방패삼아 과천으로 향했다.
"아이고...고맙다"
표정은 하나도 고마와 하지 않지만 속으론 많이 고마와 하신 아버지 모습을 보며 주착맞게 코끝이 찡했다.
'아버지 건강하셔야 되요. 다음에 또 해다 드릴께요.'
어버이날 즈음에 뵌 아버지는 감기가 뚝 떨어진 상태였다.
"네가 해준 거 잘 먹었다."
난 속으로 ' 역시 봄철엔 제철 나물을 먹어야해'
요즘 왜 매일 풀만 먹냐는 둘째 딸아이에게 확신에 차서 말한다.
"너 내가 그렇게 풀 먹여서 이번엔 감기 안걸리고 넘어가는 거야! 고마운 줄 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