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저기 가면 안 돼? 배고픈데."

50살 기념으로 딸과 함께 한 유럽 여행 중, 마드리드에 도착한 둘째 날 아침. 호텔 밖으로 나서자마자 배고프다고 투정 부리는 딸을 달래며 마드리드 명소 중 하나인 산 미구엘 시장(Mercado de San Miguel)으로 향했다. 딸이 가자던 28유로짜리 빠에야 식당 대신, 마드리드 사람들이 즐겨 간다던 그 곳에서 보다 다채로운 음식들로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다. 내심 '아니 무슨 볶음밥이 28유로(4만 원 가량)나 해? 산 미구엘 시장에 가면 뭐든 훨씬 맛있고 저렴하겠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산 미구엘 시장은 신선한 '스페인 음식의 보고'였다. 꼬치에 꿰어져 손님을 기다리는, 윤기가 자르르한 올리브들,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신선한 해산물들과 김을 무럭무럭 내며 끓고 있는 스프, 그리고 그릇 모양의 빵 안에 가득 채워진 샐러드와 각양각색의 타파스(Tapas)들 까지. 아침에는 우선 현지 음식 몇 가지만 맛보려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무얼 먹을까 고르는 눈길이 분주해졌다.

 

결국, 뜨끈한 하몽 스프와 먹음직스러운 타파스 몇 개, 그리고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겼던 빵 안의 샐러드와 재료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요리해주는 해산물 요리를 아침 식사로 골랐다. 시장 안에 손님들의 식사를 위해 만들어진 바(Bard) 형태의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한가득 차려놓고 나니 어느 요리 잡지 속 식탁이 부럽지 않다. 시장을 구경하던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가 차려놓은 음식들의 사진을 찍어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맛은 물론 기대 그 이상! 스페인 여행 중 먹었던 음식들 중에 단연 최고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으로 음식 값이 총 50유로가량 나와 아주 약간은 씁쓸하지만, 언제 또 마드리드에서 이렇게 풍성한 아침 식사를 하겠느냐는 생각에 조금도 아깝지 않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문득 커피가 생각나 시장 구석의 커피바에 앉았다.

"Dos cafes con leche, por favor."(카페라떼 두 잔 주세요.) 학교에서 배웠다는 딸의 스페인어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외국인 여학생의 조금 어색한 발음이 재미있는지 주인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친절하게 따듯한 커피 두 잔을 내준다. 풍미가 일품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따스한 온기가 퍼지면서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딸과 함께 맞은 조금은 특별한 아침.

 

비록 28유로를 아끼려다 50유로 가까이 쓰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오래 기억에 남을 유쾌한 아침식사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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