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물에 만 밥과 왕자님
2001년 겨울,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남편과 결혼을 했다. 가진 거 하나 없는 그였지만 그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 묘한 모성을 불러 일으켰는지 아니면 운명이라고 불러야 할는지...하여 신혼의 전세집을 마련할 돈도 당장에 없었고, 또 매달 내야하는 이자가 두려워 그냥 시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시집은 달랑 방 3개. 시부모님과 우리 내외가 살면 더도 덜도 짐을 놓을 여지도 넉넉지 않았다. 신랑에 대한 사랑과 믿음 하나로 당당하게 시부모님과 한 살림을 시작한 나는 곧 후회하고 말았다. 갓 결혼한 나에게 시어머니는 가까우면서도 불편한 사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 후 저녁을 차려주시는 시어머니에게 오늘 몸이 좀 안좋다는 이야기만 하고 우리의 신혼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어머니도 아직은 서먹서먹하신지 식사를 더 권하시지 않으셨다. 두 평 남짓한 방에 앉아서 갑자기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늘 엄마곁에서 대학까지 다니며 말 잘듣는 이쁜(?)딸로 커왔고, 한번도 자취라는 것도 해본 적 없었던 나는 신랑이 아직 퇴근하지 않은, 오직 나 밖에 없는 이 시집의 이 공간이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시어머니가 들을새라 숨죽이며 훌쩍이고 있었는데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좀 늦게 들어갈께요. 먼저 밥먹고 자고 있어요.” 행여 훌쩍이는게 신랑에게도 들킬새라 난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그러라는 대답만 해놓고 쓰러졌다. 가벼운 열과 함께 몸살기가 찾아왔다. 그동안 시부모님과 살면서 긴장이 되었었나 보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 앓으며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기진맥진했다. “여보!”, ‘어디서 나는 소린가? 꿈인가?’ 늦게 들어오겠다던 남편이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불 위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 세워 안아주는 신랑을 보니 또 눈물이 흐른다. “당신,밥 안먹었지? 내가 차려줄게. 기다려요.” 그리고 신랑이 가져온 쟁반 위에는 물에 말은 밥 한 그릇과 신 김치가 얹어져 있었다. 밥 한 숟가락에 김치를 잘게 찢어 올리고 나에게 권한다. “얼른 먹어요.” 물에 밥을 말았는지 눈물에 밥을 말았는지 모를 나는 훌쩍거리며 신랑이 떠주는 밥을 받아 먹고 있었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높은 첨탑을 올라 키스를 해주는 그 로망의 왕자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은 세상 그 누구보다 멋진 나의 왕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