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맛을 타고> 눈물 젖은 밥맛

조회수 13144 추천수 0 2012.01.21 07:27:05

  스무살의 겨울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50일간의 도보여행을 떠났습니다.

제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에 텐트, 취사도구, 쌀 등의 부식재료까지 넣고 다니면서

잠은 동네 마을회관이나 그것도 구하지 못했을 때는 텐트를 치고 자면서 다녔지요.

도보여행을 빙자한 무전여행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전국의 음식맛을 현지에서 볼 수 있었던 식객여행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있으면 지나시던 아주머니가 김치와 밥을 가져다 주셨지요. 덕분에 여행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각 지방 김치의 특징을 논할 수 잇는 수준이 되어 어느 지방 김치가 더 맛있다는 김치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장흥을 지날때 하룻밤 텐트 칠 곳을 묻는 우리으 배낭을 무작정 자신의 오토바이 뒤에 싣고 집으로 끌고 가시더니 바다에서 막 가져온 파래며 굴로 한 상 잘 차린 남도 바닷가 인심을 맛보여주셨지요. 그리고 커다란 고구마 통발이 잇는 방에서 재워 주셨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숙식제공!

  함양에 어느 마을회관에서 잠을 얻어자는데 할아버지들이 막걸리를 다 마셔야 집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끝도 없이 나오는 막걸리를 마시다가 다음날 내내 비몽사몽으로 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시골 할아버지들의 주량의 상상불가!

  무주 산골마을에서는 마을회관이 변변치 않다며 자신의 집을 내어주신 이장님이 찐고구마와 동치미를 살며시 방문으로 넣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출출한 겨울밤을 채워주었던 고구마와 동치미의 찰떡궁합, 안먹어봤으면 말을 말어.

  도보여행의 막바지, 텐트생활에 지쳐 들어간 여관의 주인아주머니가 전남 땅끝에서 걸어왔다는 우리를 보고는 자신의 고향이 벌교라며 고향마을 근처에서 여기까지 걸어론 우리를 대견해하시면서 인근 황태덕장에서 가져온 황태조림을 내어주셨습니다. 그것보다 맛있는 황태조림을 지금까지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던 특별한 맛은 동해 두타산에서 였습니다. 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샘물이 없더군요. 가지고 간 물도 떨어진 상태고 녹여먹을 눈조차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은 비상식량, 다음날 아침도 사탕, 비스킷. 산을 내려가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내려가는데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무건운 배낭을 메고 세끼 굶을 몸으로 가파른 산길을 헤치며 길을 찾는데 그만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요. 하지만 내가 여기서 퍼지면 다른 일행이 내 배낭에다 나까지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를 악물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군요. 겨우 길을 찾아 하산을 하게 되었고, 하산길에서 동해의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신다는 두분을 만났는데 우리의 거친 차림새와 그간 밥구경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자신의 차에 우리 배낭을 싣고 공장의 함바로 데리고 가서 저녁밥을 먹이셨습니다. 밥을 퍼주시던 식당 아주머니들 역시 몇끼 굶은 저희들이 내미는 식판에 고봉밥을 퍼주셨지요. 세끼를 밥을 굶고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산을 헤메다가 죽을것만 같았던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본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때 먹었던 눈물 젖은 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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