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이 태어나면 한 생명이 저문다고 누군가 그랬다. 내가 첫째를 낳고 삼칠일이 지나기 전에 할머니께서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께서는 항상 비빔밥만 드셨다. 내가 잘못 기억하나 싶어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엄마도 맞단다. “할머니께서 유난히 비빔밥을 좋아하셨어.”
그 비빔밥은 식당에서 파는 ‘돌솥비빔밥’이나 ‘산채비빔밥’ 과는 다른 것이었다. 미친 존재감을 뽐내는 고추장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계란 후라이가 노란자 흰자의 동심원을 그리며 밥 한 가운데에 예쁘게 앉아 있지도 않았다.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전날 와서 기름 튀겨가며 하루 종일 굽는 고구마튀김, 생선전, 소고기- 맛살- 쪽파의 삼색 꼬치, 오징어 튀김 등등이 상에 가득해도 항상 비빔밥만 드셨다. 그 당시 어느 집에나 있던 스텐레스 대접에 밥을 얹으시는 게 제일 먼저다. 그리고는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무나물, 아니 뭐든 좋다. 상 위에 올라와 있는 나물들을 턱 턱 넣고 척척 비벼서 나물들이 수양버들처럼 숟가락에서 흘러 나온 채로 입에 넣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왜 그렇게 비빔밥을 좋아하셨을까.
그렇게 식사를 하시고 상을 치울 즈음이 되면 할머니께서는 우리들이 다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으셨다. 마른 몸에 굽어질 대로 굽어진 허리, 처진 가슴으로 뒤돌아서 몸빼바지로 갈아입으시던 할머니. 그 모습을 떠올리면 서글퍼진다. 할머니께서는 왜 그러셨을까.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께서 그렇게 비빔밥을 좋아하시던 것도, 가족들 앞에서 옷을 갈아 입으시던 것도 이해가 된다.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우리 앞에서 옷 갈아입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거기 앉아 있는 모두가 할머니에게서 나온 가지들인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젖도 물리고 매일 같이 목욕도 해 보니 아이들 앞에서 옷 갈아입는 게 나에게도 자연스럽다.
할머니께서 항상 비빔밥을 선택하셨던 것도 ‘초딩 입맛’을 벗어나는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제 알 것 같다. 비빔밥은 객관적으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비빔밥은 할머니의 이기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물만 맛있으면 비빔밥은 맛있을 수 밖에 없다. 나물에 이미 간이 배어 있으니 고추장이 필요 없다. 계란 후라이를 얹지 않아도 색색의 나물만으로 예쁘고 맛있다. 나물 삶으면서 나온 국물만으로 비비기 편하고 이미 참기름 혹은 들기름으로 무쳐져 있기에 참기름 두르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께서 맛있는 반찬을 우리에게 양보하셨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우리 시골 나물로 가득한 비빔밥은 명절상의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