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미역국
광주 북구 운암동 허양아
겨드랑이 밑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 한점이 간절했던 지난 여름은, 웨딩마치 울리고 바로 생긴 애 때문에 만삭의 몸으로 더위와 싸워야 했고, 집에 에어컨도 없는 터라 발 밑에 선풍기를 틀고 36.5도 짜리 뜨끈한 신랑대신 얼린 페트병을 껴안고서야 잠을 청하던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8월 2일 아침, 진통으로 새벽 내 잠을 설쳤던 저와 신랑은 옷가지 하나 챙길 경황없이 곧장 다니던 산부인과로 향했습니다. 애가 오전 중으로 나올 것 같단 신랑의 전화를 갑작스럽게 받으신 친정어머니는 다니시던 회사에 휴가를 내시고 아침 나절부터 급하게 미역국을 끓여 들고 올 채비를 하셨지만 이래저래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저녁때가 되어서야 광주에 올라오셔서 첫 손주를 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후조리를 해야하는 딸 덕분에 친정어머니 역시 조리원에 있는 일주일 내 땀을 삐질 삐질 흘리시며 지내셔야 했지요. 8월 삼복더위에 흔하디 흔한 냉방기구 하나 없이 그렇게 휴가를 보내신 어머니는 시골 댁으로 내려가신 후에도 일 하시느라, 그리고 제 조리원 퇴원 날짜 맞춰 이것저것 반찬을 준비하시느라 동분서주 하셨던 모양입니다.
조리원 퇴원하는 날, 집으로 커다란 택배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종이 상자 밑둥은 정체모를 액체로 흠씬 젖어 거의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커다란 통이 세 개-한통은 쇠고기 미역국, 한통은 해산물 미역국 마지막 한통은 추어탕 그리고 불려놓은 미역과 온갖 반찬들이었습니다. 신랑과 제가 족히 3주는 먹을만한 식량꾸러미였지요.
그 날 저녁식사 때, 친정어머니가 보내준 국이랑 반찬을 꺼내서 먹으려는데 약간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혹시 내 입에만 그런건가 하고 조심스레 신랑의 표정을 살펴보니 신랑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얼음팩을 끼워 넣고 스티로폼 상자로 이중 포장을 했다 해도, 이 삼복더위에 꼬박 하루동안 상온에서 방치된 음식들이 제대로 일리가 없었던 거지요. 더군다나 산후조리하는 저를 위해 짜지도 맵지도 않은 나물 종류를 해서 보내셨으니까요. 이 많은 것들을 맛도 제대로 못보고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어지간하면 먹어봐야겠다고 맘 먹었지만, 수유를 해야 하는데 혹시 갓난아이에게 탈이라도 생길까 맘 한구석에 생기는 걱정과 불편한 맘 또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오전에 도착했어야 할 택배가 늦어지자 택배회사를 원망하시며 안절부절 못하시던 친정어머니를 떠올리니 선뜻 제 입으로 ‘버리자’ 라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요. 결국 국은 신랑손에 의해 모두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습니다. 나물들 역시 쉰 냄새가 나긴 했지만 ‘난 괜찮은데 뭘~’하며 신랑앞에서 보란듯이 끝까지 먹었지요.
택배 잘 받았노라고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수화기 넘어 어머니는 아직도 남은 원망 어린 목소리로 반찬이랑 국이 괜찮더냐고 걱정스럽게 물으셨습니다.
더운데 고생스럽게 왜 이리 많이 보냈냐고 핀잔으로 운을 떼면서
“다 멀쩡하더라고, 맛있게 잘 먹었어”
라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야 엄마뿐 아니라 제 맘도 편할 것 같아서였죠. 그제서야 맘이 놓이셨는지 친정어머니께서 껄껄 웃으시면서,
“어제 늦게 퇴근해서 시장 상가 문이 거의 다 닫히는 바람에 반찬도 몇개 못했다야. 시장 봐와서 정신없이 음식 하다본께 새벽 다섯시가 다되었드라야. 참말로 시계보고 나도 어이가 없던마”
새벽까지 잠도 안자고 레인지 불 앞에서 후끈한 공기를 온몸으로 감당하시며 땀을 뻘뻘 흘리셨을 친정어머니 모습과 음식물 쓰레기통 미역국이 오버랩되면서 순간 목이 메었습니다.
“엄마 다음에 보낼 때는 그냥 미역만 보내. 주서방도 미역국 잘 끓여”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조리 잘 해라. 힘드니까 애기 많이 안아주지 말고, 누워있어 응~?”
전화를 끊고 혼자 우두커니 부엌에 앉아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서럽던지요. 고생스러우니 미역만 보내라는 제 말에도 당신 딸 걱정만 하시던 친정어머니는 여지없이 첫 택배의 국이 다 떨어졌겠다 싶을 때쯤 또 미역국을 한 솥 끓여서 보내셨습니다. 다행히도 그 국은 쉬지 않아서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었네요.
지금도 미역국만 보면 그 때 일이 생각나네요. 전에는 시골집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가 싸주시던 음식들이 무겁고 귀찮다고만 여겨졌는데 지금은 싸주신다고 하면 무조건 달라고 하네요.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딸한테 ‘넌 맛을 알긴 아냐’ 라고 핀잔주시면서도 잘 먹어주는 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셨으니까요.
정작 당신 입으로는 몇 점 들어가지도 않을 음식을 온 정성을 들여 만드시던 엄마 맘을, 제가 엄마가 되고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라도 이해하게 되었네요.
둘째를 갖게 되면 또 엄마표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게 되겠죠? 둘째는 계획 잘 세워서 꼭 봄이나 가을쯤에 낳아야겠습니다. 엄마표 미역국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