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꽈리고추찜무침

조회수 8174 추천수 0 2012.01.14 16:32:47

딱 작년 이맘때쯤... 춥고 무거운 겨울 가운데 바들 바들 떨고 서 있었다.

졸지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고, 그 몇 달 전 하던 사업이 문제가 된 동생이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야말로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이 빡빡한 하루 하루를 보낼수 밖에없었다

먹고 살아야겠기에 하던 가게 일은 계속 해야했고, 집안 살림 또한 오롯이 내 몫이었다

혼자 남으신 아버님을 챙기는 일 또한 내 어깨 위에 소복이 앉아있는 짐이었다.

폭설이 온 뒤에 며칠째 기온은 영하 10도를 오르락 내리락 했고 너무도 추웠던 날씨라 밤새 틀어 놓은 가게의 싱크대엔 작은 고드름이 맺혀있었다.

너무도 춥고, 해야 할 일은 많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고 움직여야 할지 막막함이 지나 가슴이 뻐근해 지기 시작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나를 흔들었다.

뭐 그리 잘 못살지도 않았는데, 주변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고 잘 사는 것 같은 데 왜 나만 이렇게 구질 구질 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쏟아지는 눈물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둑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가게 안쪽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씨름을 하고 있을 때 가게 문이 딩동 딩동 하고 열렸다.

안에 있는 가?’ 단골손님이신 동네 형님이 들어오셨다. 알록 달록한 상보가 덮힌 작은 쟁반을 들고..

.‘요즘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있지., 쯧 쯧. 자네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 만들어 가지고 왔네. 어여 먹어봐,, 맛이 있을라나...’

상보를 걷어내니 꽈리고추찜무침, 육개장, 파래무침 그리고 알타리 김치 한 종지 그리고 수복히 담긴 흰 쌀밥 한 공기

고추찜은 여름에 먹어야 제맛인데.. 겨울이긴 하지만 자네 자당께서 자주 해주시던 것이잖아, 욱개장이랑 파래무침도 그렇고

그랬다. 어머님 이었다.

어머님의 반찬 들이었다

키우는 일을 워낙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시멘트만 가득했던 집 마당에 온갖 화분과 스티로폼 박스로 고추와 상추, 갓 같은 푸성귀를 넉넉히 키워 여름철 식탁을 파릇하게 꾸리셨다.. 채 여물지 않은 야들한 꽈리 고추를 밀가루에 묻힌 뒤 쪄서 갖은 양념으로 조물 조물 무쳐내는 꽈리고추찜 무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음식이었다.

토란대와 고사리를 질 좋은 사태고기국물에 푹 끓여낸 육개장 한 대접을 가득 먹으면 지쳤던 배가 든든해지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였다.

파래무침은 겨울이면 늘 식탁위에 오르던 단골 메뉴였다. 비싸지않은 파래와 시원한 무 한 개면 세상의 모든 비타민은 다 들어 있다시면서 식초와 간장으로 맛을 내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내시던 어머니...

어여 한술 떠봐, 맛이 있을는지 .. 자네 얼굴이 그게 얼굴인가, 푹푹 퍼 먹어 남기지말고 다 먹어야 하네. 편히 먹어 나는 가네

컴퓨터 책상위에 놓인 쟁반에선 따스한 쌀밥에선 아직도 구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육개장 한 숟갈을 떠 입안에 넣고, 밥 한수저위에 꽈리고추찜무침을 얹어 입안에 넣었다

 파래무침의 새콤 달콤한 바다향기가  입안으로 들어와 나를 잡아 흔들어 깨웠다.

실로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

쟁반위에 밥공기, 국 탕기. 보시기들을 깨끗이 다 비웠다. 나는 가득해졌고 행복했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물을 데워 차를 만들어 먹고, 싱크대에 붙어있는 얼음을 녹이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들어 청소를 하였다.

지난 여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고추농사를 포기하였으나 올해에는 화분 몇 개라도 지어야겠기에 화분과 흙더미들을 모아 놓았다.

올여름에는 맛있는 꽈리고추찜무침을 해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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