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짠 맛과 매운 맛 그리고 신 맛을 매우 즐기셨다.
아버지의 밥상에는 생선이나 육류로 된 주요 반찬 외에도 철따라 멸치젓, 갈치속젓, 명란젓, 창란젓 등의 젓갈류와 포항사람들이 즐겨먹는 가자미 밥식해,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삭힌 콩잎, 장아찌, 이런 것들이 올라갔다.
아버지는 종종 ‘밥상에 반찬이 많은데 먹는 사람이 밥을 비벼 먹는다면 반찬이 맛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대학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방학이면 아버지의 점심밥상과 식구들의 저녁밥상을 책임져야했던 나는 매끼 긴장된 마음으로 차림표를 구상하고 준비해 마치 시험 결과를 기다리듯 아버지의 반응을 살폈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할머니가 구비해 놓으시는 재료며, 만드는 반찬 종류가 꽤나 다양해서 자주 처음 보는 식재료를 무턱대고 손질해야 했다. 할머니의 코치가 없었다면, 낭패 보는 일이 허다했을 것이다. 여하튼 계속되는 식사 준비를 통해 나는 아버지의 입맛에 맞는 양념의 기본에 통달했고, 어떤 조합의 음식들을 즐겨 드시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할 땐, 꼭 양파와 매운 고추가 많이 들어가는 초간장을 만들었다.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는 유장을 발라가며 석쇠에 굽든지, 간장양념해서 조린다. 그 외 이름을 잘 모르겠는 말린 생선들도 대부분 가자미처럼 조리하고, 생선은 ‘아우, 짜!’ 싶게 소금 간을 해 며칠 말린 뒤 굽는다. 그 외에도 아귀국, 물곰탕 및 찜, 고춧가루와 마늘, 고추장을 듬뿍 넣은 두루치기류... 주로 이런 요리와 나물 반찬들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친정인 포항에서 회를 박스로 보내오는 날이면, 우리 집은 잔치집이 되었다. 손님 두어 분과 함께 귀가하신 아버지의 주문대로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마늘을 적당히 배합해 농도를 맞춘 초고추장을 아버지께 검사받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느 여름날 점심에 가지 무침을 했다. 식초를 넣는 건지 아닌지 몰랐는데, 할머니가 안 계셨다. 고민하다가 식초를 넣고, 조선간장과 마늘,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 무친 것을 밥상에 올리고는 아버지 얼굴을 살폈다. 한 입 맛을 보시더니, 양념을 뭐뭐 넣었냐고 물어보시곤 ‘맛있다’며 금방 가지무침 접시를 다 비우셨다. 유독 그 기억이 선명하다.
얼마 전 아버지 기일에 이 생각이 나, ‘밥상 차리기에 왜 그토록 목숨을 걸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답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쯤 될 것 같다. 내가 차린 밥상을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면 인정받은 느낌 때문에 행복했지만, 식사를 시원찮게 하시면 늘 신경질이 났으니까...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가 손수 자신의 밥상을 차려 드신 적은 없다. 또 나에게, 다른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밥을 해 주신 적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요리를 해 주신 적은 몇 번 있다. 이름 하여 ‘정구지 붕어찜’. 밥상 차리기에 목숨 걸었던 나를 회상하던 끝에 아버지의 유일한 요리인 붕어찜이 생각났다. 밤낚시에서 돌아온 새벽, 직접 손질한 붕어에 칼집을 넣고 아버지만의 특제 양념과 부추를 잔뜩 얹어 팔팔 끓인 붕어찜. 사실 맛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흙냄새 비슷한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하고, 붕어 살이 생각만큼 풍성하지 않고 가시가 많아서 조금 먹다가 젓가락을 놓았던 기억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버지의 붕어찜을 하나도 안 좋아했다.
그런데, 아버지 기일에 밥상 차리기의 기억과 그 붕어찜이 생각났다. ‘비법을 전수받아 놓을 걸...’ 혼잣말도 해 보았다. 나는 아버지와의 사이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아버지를 여의었다. 벌써 다섯 해가 지났으니 얼었던 그리움이 녹아서 퍼져 나오는가? 가끔 봄비 내리는 날처럼 마음이 시리다. 붕어찜 파는 곳을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