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기도 파주이다. 40년 전 내 유년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나는 꿈속에서조차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고향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그 추억 속에서 살곤 한다.
특히 친정어머니가 해주셨던 감자 요리는 내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음식이다. 덕분에 나는 감자로 만든 음식이면 뭐든지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 맛을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어머니께서는 밭에서 막 캐낸 감자를 물에 씻어 아무것도 넣지 않고 껍질째 가마솥에 쪄내셨다. ‘식으면 맛이 없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감자를 껍질 벗겨서 건네주셨는데, 배고픔을 잊게 하는 그 따끈한 포만감에 온 세상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조미료를 가미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그리도 감자가 포근포근하고 맛있었는지......
지금도 정말 모를 일이다.
황태포와 감자를 들기름에 살짝 볶다가 물과 다시마를 넣고 뽀얗게 끓여낸 감자국은, 나보다도 아버지께서 먼저 ‘아 시원하다. 국물 더 없냐?’ 하시며 더 찾으셨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가끔씩 어머니께서는 감자를 곱게 갈아서 잘게 채 썬 당근, 부추, 양파 등의 채소와 함께 감자전을 부쳐주셨다. 들기름에 부쳐진 감자전의 고소함과 바삭함은 코와 혀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어, 오랫동안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학교급식이 안됐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도시락으로 싸주셨던 감자볶음은 지금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밑반찬이다. 굵게 썬 감자를 굵은 멸치와 함께 고추장과 들기름에 볶다가 물을 조금 넣어 바짝 졸인 감자볶음은 의외로 맛있었다. 점심시간 교실 난로 위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도시락 속의 밥과 감자볶음을 친구들의 반찬과 함께 섞어 만든 비빔밥은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어렸던 나는 멸치가 싫어서 골라내고 감자만 먹었지만, 아마도 그 감자볶음이 특별히 맛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멸치가 우려낸 깊은 맛 때문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유별나게 감자를 좋아하는 엄마 식성 때문일까. 우리 아이들도 감자를 매우 좋아한다. 여행도중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리면, 아이들이 찾는 간식 1순위가 바로 통감자구이다. 온 식구가 통감자 하나씩 입에 넣으며 행복해하곤 한다.
그 옛날 간식거리가 풍부하지 못했던 유년기였지만, 어머니의 감자 요리 덕분에 나는 참 배부르고 행복했었다. 어머니처럼 나도 가족에게 맛있는 감자요리를 해주고 싶지만, 어머니 손맛 같은 맛이 도통 나질 않는다. 어머니께 요리를 배우고 싶지만, 서글프게도 아버지 어머니 두분 모두 이제는 고인이 되셨다. 어릴 적 옛 맛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어설프게 어머니 요리 흉내만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