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하고 편식이 심했던 나는 먹을 수 있는 음식보다 못 먹는 음식이 훨씬 더 많았다. 지금까지도 닭의 형체가 그대로 보이는 음식은 먹지 못해 고작 가슴살정도요. 소고기도 살코기 부분 외에는 거의 먹지 않고, 돼지고기 삼겹살은 한 번도 손대본적이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편식 쟁이다. 그러니 닭발, 보신탕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단짝 친구 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밥을 차려주셨다. 밥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이 한 가득 놓여 있었다. 색깔이 약간 하얗고 들깨 냄새가 나서 ‘우리 집 육개장과 다르네.’ 라고 생각할 즈음, 친구어머니는 맵지 않게 끓여 봤노라고 하시며 밥 위에 양념한 고기도 잔뜩 올려주셨다. 조금 맛이 특이한 것 같았지만 원래 그 친구 어머니는 카레에 계란도 넣으시는 조금 독특한 분이셨기에 육개장에 밥 한 그릇을 다 먹어 치웠다.
평소 이것저것 가려 먹던 내가 그 특이한 육개장을 뚝딱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친구 어머니도 흐뭇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엄마에게 전해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빙긋이 웃으며 “보신탕을 그렇게 맛있게 잘 먹었다며?” 하시는 게 아닌가? “네? 내가 먹은 게 육개장이 아니라 보신탕이라고요!” 비위가 약한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나려했다. 하지만 엄마는 “선입견 없이 먹으면 못 먹을 게 없다”며 손으로 내 입을 지긋이 막으셨다. 그 뒤로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내 편식을 고치려 하셨지만 허사였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난 여전히 비위가 약하고 편식 쟁이다. 정반대로 남편은 비위 약한 것을 이해 못할 정도여서 첫째와 둘째의 편식은 오로지 내 탓이다. 그래도 남편은 나의 편식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편식 쟁이어도 음식은 맛깔스럽게 하기에, 내가 못 먹어도 남편의 입맛은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온 식구가 잘 먹는 칼칼한 육개장을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