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에 갈일이 있었다. 얼마전 들은적이 있어 점심시간치고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유명하다 싶은 수제집으로 들어갔다.30분은 이른 시간임에도 자리 여유가 없을만큼 벌써부터 분비는 탓에 눈치없이 혼자인 나는 구석에 안내되어 수제비를 한그릇 주문했다..
수제비 한술을 떠서 넘기다가 눈물을 쏟을뻔했다. 맛이 아주없다거나 아주 좋다거나 한게 아니고… 비슷한것은 더욱 아니었는데도 엄마의 수제비가 생각났기때문이다. 마흔을 넘기고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 수제비 맛을 알게 된 것일까?
엄마의 수제비와는 확연히 구분되었는데,
모양부터 많이 달라 엄마수제비가 좀 작고 도툼하다싶은데 비해 그것은 얇고 넓적하고…
겨우 호박 한가지 밖에 들어간 것이 없어 단촐하기까지하던 엄마수제비에 비해 이것저것 그리고 갖은 양념이 엄마 수제비에 비해 풍성하기까지 하다고 할수있을성 싶었다.
40년이 지났음에도 딱히 맛의 차이를 정의 할수는 없지만 엄마 수제비 맛은 확실히 달랐다.
한참지나서 알게된것이지만 아버지가 출근을 않하시고 형,누나도 학교에 가지 않던 그날은 여지 없이 일요일이었을 것이라는것.
새벽부터 일을 나갔다가 점심때가 되면 들에서, 빨레터에서 급히 돌아온 엄마는 넓다란 두레반에 다딤이 방망이로 밀가루 반죽을 대충대충 밀어서 냅다 반죽을 들고 부엌으로 향하고 이렇타할 놀이감이 없다거나 놀이 상대가 없었던 나는 그런 엄마를 뒤쫒아 솥뚜껑을 열고 반죽을 떼어서 끓는 물에 던지는 엄마의 손놀림을 호기심있게 살피곤했었다.
엄마곁에서 일 돕는다며 짚, 나무 잔가지를 아궁이 불속에 던지는 장난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었고….
머지 않아 배추김치 한가지와 수제비를 사이에 두고 반죽을 빚었던 두레반에 나를 포함한 아버지 큰형,작은형,누나 우리가족 다섯은 둘러앉았다.
수제비를 먹는 형,누나는 어땠는지 기억에 없는걸 보면 내 배가 고파 먹는데만 열심히였었던거고.
어쩌다 물이라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갈라치면 틀림없이 부뚜막에 앉아서 딸랑 수제비대접을 손에 들고 숱가락으로 입에 수제비를 아무렇게나 담고있는 엄마와 마주쳤다.
왜 엄마는 두레반에 우리들과 함께 하지 않을까?
사실 두레반이 식구 모구에게 자리를 내주기에는 작기도 했지만…..
그때 난 너무 어렸다.엄마에게 묻지도 않았고, 오래 궁금해 하지 않아 곧 잊어버고 그냥 그런것으로 여겨버렸었다.
밥상머리 같이하기에 다정다감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리 반갑지도 않은 날이 많았을지 모르고..
집안일이며, 들일로 지친 엄마에게 부뚜막에서의 짧은 점심은
잠시나마 자기 만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고 지금에서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대부분이 넉넉치 않은 생활이어서 쌀이 귀했을테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학교에서는 도시락 혼식검사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수제비는 별식아닌 어쩔수없는 엄마의 궁여지책이었을것이다.
어린시절 이후로 학교,군대,직장생활때문에 집을 떠나 외지로 떠돌았다. 변변치 않은 일을 핑계로 엄마생각은 늘 뒷전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십년이 넘었다.
이제 그때 엄마 나이가 되어 아주 조금이나마 부뚜막의 엄마를 이해할수 있게된것 같다.
끼니때가 되면 수제비라고 내건 식당간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엄마 수제비 맛이 간절한 것은 지친 중년에 들어서도 잠시만이라도 안식이 되어줄
엄마 품이 그리운 까닭이다. 정말 엄마가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