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고비덕이라는 산골마을에서 나는 감자바우로 자라났다. 여름이 가까워오면 드넓은 밭에 보라색, 하얀색 감자꽃이 피었다. 화려하지 않으나 정겨운 꽃. 흙 속에 무슨 색깔 감자를 품고 있는지 꽃으로 수줍게 알려주었다. 막 흙 속에서 굴러 나온 햇감자들의 연한 껍질을 숟가락으로 벗겨내어 쪄낸 포실한 맛. 그러나 내게 더 그리운 것은 ‘썩은 감자떡’이다.
해마다 몇 가마니 씩 캐어내는 감자 중에 썩은 감자들을 골라내면 그것도 한 가마니 정도는 되었다. 엄마는 그것들을 물에 담가 우려내어 냄새를 빼고 녹말가루를 내었다. 엄마가 작업을 시작하면 우리 마당에는 거무스름한 썩은 감자녹말을 물에 우리는 함지박들이 가득했다. 그동안 퀴퀴한 냄새 역시 마당을 감돌았다. 끝없는 손길을 거쳐 햇살 아래 뽀득뽀득하게 말린 가루가 되면 마침내 엄마는 반죽하여 밭에서 막 따온 강낭콩을 넣어 떡을 빚으셨다.
그날도 엄마는 감자떡을 찌고 계셨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여름 오후. 강원도 산골짜기 흙벽집 아궁이에서 나무는 자작자작 불꽃을 간간이 튀기며 무쇠솥을 달구고 무쇠솥위의 떡시루에서는 감자떡이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던 나는 부엌 봉당에서 폴짝거리며 떡 먹을 생각에 들떠 있는데 문 밖에 아이 목소리가 났다. 아랫마을 길운골에 사는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였다. 심부름으로 빗속에 울창한 숲길을 지나 지나 산 중턱고비덕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엄마는 가려는 아이를 붙들어 앉히고 막 쪄낸 썩은 감자떡을 먹였다. 부뚜막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부끄럽게 받아먹던 그 소년. 그러나 집에 가서는 가서 한동안 무척이나 졸라댔다고 한다. 감자떡 해달라고. 꼭 썩은 감자떡으로.
썩은 감자떡 맛은 혀끝의 맛보다는 냄새가 좌우하는 맛이다. 썩은 것에서 정화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깊은 맛은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색깔은 거무스름하지만 투명하다. 탄력 있고 쫄깃하다. 이런 것이 썩은 감자떡의 매력이다. ‘썩은’이라는 말이 주는 불쾌한 느낌 때문에 ‘썩은’을 떼어내고 싶지만 그냥 감자떡과는 비길 수 없으니 그대로 ’썩은 감자떡’이다.
지난 봄 세상을 뜨신 엄마. 엄마를 그리워하다 보면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아보고 싶다. 썩어가다 엄마의 손길이 닿아 다시 먹거리로 상위에 놓였던 감자떡. 이젠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할 그 경건한 ‘썩은 감자떡’이 간절히 생각난다.
장윤/ 경기 광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