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년 쯤 전 그 해 겨울 제일 춥다던 어느날,
막 대학 합격 소식을 받았던 아들 녀석이 친구, 선배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어둔 저녁길을 나섰다. 말하자면 태어나 첫 공식 술자리였던 셈.
벌써 오래 전에 키도 아빠를 넘어섰고 어른 흉내 내느라 잘난 척도 했지만 술 마시러 나간다는 아들 뒷 모습은 딱 어수룩한 애였다. 그러니 늦어지면 꼭 전화하라는 말을 되풀이 할 밖에.
밤 12시가 될때까진 그런대로 쿨한 엄마 모습을 보이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는데 어라~~1시가 가까이 되도록 전화는 커녕, 망설이다 내가 먼저 건 전화에 답도 없었다. 바깥엔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아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봐도 "그대 목소리가 들려~~~"하는 컬러링 소리만 무정하게 흘러나왔다. (그대 목소리가 안들린다고!!!)
2시 반이 넘어서면서 난 완전 빈사상태.
처음 술자리에 선배들이 억지로 퍼먹이다 뭔 일이 났나, 들어오다 술에 못 이겨 인적없는 길가에 쓰러지진 않았나 그동안 줏어 들은 온갖 나쁜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혼자 눈물을 흘리다 먼저 잠든 남편까지 깨워 계속 전화를 돌리는데 3시 가까이 되어 드디어 아들 목소리가 저 편에 나타났다.
왜 전화 안 받았냐고, 어디냐고 다급히 물으니 전화기를 넣은 채로 외투를 벗어두어 소리를 못 들었다 하면서 지금 택시타고 집에 들어가는 중이란다. 아이구~~
어쨋든 천만다행이다 하고 한숨은 돌렸는데 멀쩡한 얼굴로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나니 화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화 한 통만이면 간단한 일을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다니, 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이 모양일까 싶어 밤새 내 탓까지 해가며 속을 끓였다.
다음날 아침 난 식탁을 깨끗이 비워둔 채 그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 가버렸다.
'뭔 장한 일을 했다고 아침은 무슨~~' 하는 마음으로.
학원 끝나고도 아들 녀석 꼴이 보기 싫어 혼자 쏘다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섰더니 웬 식초 냄새가 집안 가득했다.
그리고 아침에 비워두고 간 식탁 위엔 어머나! 처음보는 연두색 예쁜 초밥이 한 가득 큰 접시에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싶어 엉거주춤 방에서 나오는 아들 녀석을 쳐다보니 어색한 목소리로 "점심드세요" 이런다.
이걸 저 녀석이 만들었단 말이야? 라면 한 그릇도 해다 바치게 만들었던 녀석이? 설마~ 하면서도 괜히 감동받은 척 하기가 싫어 아무 소리없이 식탁에 앉아 초밥을 먹었다. 오이를 얇게 썰어 밥에 두르고 날치알을 듬뿍 얹은 초밥은 먹어 보긴 커녕 처음 보는 요리였는데 크기는 좀 컸지만 첫 솜씨라곤 믿기지 않게 모양도 맛도 아주 좋았다. 무슨 생각에 이런 일을 했는지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어젯밤 지은 그 무거운 죄가 슬슬 잊혀지기도 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일.
그렇게 다 먹고 모른 척 했는데 며칠 뒤 우연히 아들 미니 홈피를 봤더니 <사죄의 초밥> 이란 제목으로 바로 그 날치알 초밥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그 밑에 쓴 글.
<아침에 일어났는데 밥이 없었다. 엄마가 아침 밥도 안 차려주고 나가셨다. 이럴 수가. 나 밥 먹이는 걸 제일 큰 일로 생각하셨는데! 정말 화가 많이 나셨나보다. 그래서 인터넷 뒤져서 초밥을 만들었다. 어쩌구 저꺼구~~> .
학교 다니던 내내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던 내가 아침을 굶긴게 아들 녀석에겐 그렇게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근사한 초밥을 척 만들어내게 했으니. 고것 참 쌤통이다 싶기도 하고 한편 이렇게 어른이 되려나 보다 싶어 흐뭇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착각, 그 충격도 뼈에 사무친 반성에까진 이르지 못했는지 지금껏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서 연락 두절이 되는 일은 여전히 종종 벌어진다. 거기다 이젠 엄마 화내는 것도. 아침 밥 안 주는 것도 무섭지도 않아 사죄의 초밥은 커녕 사탕 한알도 어림없다. 언제 진짜 어른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