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생활의 허기를 달래줄 닭볶음탕


내가 나의 입맛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서였다. 대학생 때 나는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가게 되었는데 도착한 다음날부터 얼굴에 염증이 생겼고,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한 달 이상 먹어도 낫지 않았다. 김치와 밥을 무척이나 먹고 싶었지만 구하기 쉽지 않았고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자 항상 10%쯤은 맥이 빠진 상태로 지냈다.

몇 달 뒤 한국에 돌아오고 밥과 김치, 나물 반찬을 먹기 시작하자 얼굴의 염증과 시름시름 어딘가가 아프던 증세도 말끔히 사라졌다. 음식이란 이토록 사람을 크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기졌던 교환학생 시절, 나는 그 허기를 채우고자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시도했던 음식이 닭볶음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요리였는데, 매콤한 고추장의 맛과 닭의 영양이 비실한 유학생에게는 제격인 음식이었던 듯, 나는 본능적으로 닭볶음탕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리법이라도 알아보고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무작정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먹었던 닭볶음탕의 모양새를 떠올리며 내 맘대로 만든 것이다.

아는 한국인에게 고추장을 얻고, 가게에서 토막 낸 닭을 사와 냄비에 넣고 고추장만 한없이 넣으며 볶았다. 완성된 요리는 국물은 하나도 없이 고추장을 소스처럼 몸에 두르고 있는, 무척이나 매운 닭 토막들이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캐나다인 친구들도 몇 명 불러 같이 먹었는데, 포크와 나이프를 잡고 닭볶음탕을 ‘칼질’해 먹으며 그들은 “엄청 맵다”고 혀에 부채질을 해댔다. 만든 내 정성 때문에 열심히 먹기는 했으나 억지로 먹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다시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는데, 알아보니 고추장보다는 고춧가루를 넣는 것이 맛이 더 깔끔하고 케첩도 넣으면 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새로운 조리법에 감자, 양파, 당근 등의 야채도 넣어 만드니 국물도 생기고 맛도 한결 좋아졌다.

캐나다에서 만들어 먹었던 닭볶음탕의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 닭볶음탕은 외국 생활의 허기를 달래주는 대표적인 영양음식이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미국에 연수를 가있는데 연수를 가기 전 역시 닭볶음탕을 좋아하는 그 친구와 함께 닭볶음탕을 먹었다. 내년에 친구가 연수에서 돌아오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닭볶음탕을 만들어 선물로 주고 싶다. 그 친구 역시 미국에서는 온전한 한국의 닭볶음탕을 먹기 어려웠을 테니까. 힘들고 외로웠을 외국생활을 위로해줄 맛난 닭볶음탕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새로운 조리법들을 찾아봐야겠다.


이부현/서울 강북구 인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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