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버린 그들에게 언젠가 다시 생태찌개를 끓여줄 날이 오기를
십년 전, 내가 일하던 시민단체에서는 당번을 정해 점심을 직접 지어먹었더랬다. 물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지만, 상근자 중 유일한 남성이었던 나는 행여나 남자라서 부엌일을 성의 없이 한다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당번 날이면 온통 머릿속이 ‘오늘 점심은 뭘 만들지’하는 고민으로 가득 찰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예 전날 저녁 미리 요리 사이트를 뒤져 메뉴를 정하고, 출근길에 시장에 들러 일찌감치 요리를 준비하곤 했다. 그에 비해 ‘누나들’은 감자만 넣은 된장국에다 밑반찬으로 대충 식탁을 채우기 예사였다. 그러나 그게 서운하기보다는 되레 나의 요리 본능을 자극했다. 다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게 하고야 말리라!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로 시작된 내 점심메뉴는 오징어 불고기에 바지락 칼국수, 토마토 스파게티, 또 하루는 아구찜 하는 식으로 다채롭고 변화무쌍해져 갔다. 심지어 여름 보양식으로 생닭을 사다가 인삼과 찹쌀을 넣고 일일이 이쑤시개로 똥꼬를 꿰매는 수고도 마다지 않을 정도였으니, 돌이켜보면 사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들었겠다 싶다.
그러던 어느 겨울, 그 날도 생태찌개를 끓이기 위해 열심히 재료를 다듬고 있는데 오후에 오기로 한 손님들이 점심 전에 불쑥 들이닥치는 게 아닌가. 사무실에서 도란도란 지어먹는 밥을 얻어먹고 싶어서 미리 온 거라 했다. 난감했다. 생태는 딱 4인분, 그러나 입은 아홉 개. 이미 찌개는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데 이를 어쩌나. 난처한 마음에 냉동실을 뒤졌더니 예전에 사놓은 고등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앞뒤 재지 않고 고등어를 조각낸 다음 냄비에 밀어 넣었다. 드디어 식사시간, 기대에 찬 사람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는 데는 한 숟갈이면 충분했다. 맹세컨대, 난 고등어 몇 조각 넣었다고 생태찌개 전체가 수산시장 바닥마냥 역한 비린내로 가득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그 때 그 사람들과는 연락도 안할 정도로 소원한 관계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간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 이유를 따지고 해명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더 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멀어진 마음의 간극이 메워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생태찌개 한 번 따끈히 끓여주고 싶다. 꽁꽁 언 고등어 조각이 아닌, 싱싱하고 토실한 생태에 두부와 쑥갓, 콩나물을 듬뿍 넣은 얼큰한 찌개로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보고 싶은 것이다.
최재훈/서울 마포구 서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