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괜찮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는 무뚝뚝함과 고단함이 묻어나왔다. 19일 대선이 끝나고,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을 한 다음날의 전화였다.
"왜, 그 동네는 축제 분위기냐?"
"여기도 뭐.. 어쨌든 경남은 그래도 경북보다 많이 나왔으니까... 알았어. 끊어."
지금 통영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힘이 별로 없었다. 제대 후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며 지방대 졸업하고 여기저기 취직을 해 보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 한 방 터트리겠다며 시작한 주식은 조금 모아둔 돈까지 날려버렸고, 결국 부모님에게까지 손을 벌려 갚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시 시작이라며 타지에 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 쉽지는 않은지, 매번 전화 목소리는 고단하다. 열 몇 시간씩 일하다가 쉬는 날에는 잠만 자는 동생. 그 고단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집은 삼남매다. 중동 건설붐을 타신 아버지는 사우디로 일 가시고,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림을 하셨다. 어느해 겨울인가? 친구네 집에서 도너츠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본 내가 집에 와 한참을 졸랐던 모양이다. 막걸리 찐빵을 주로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는 내 성화에 못이겨 도너츠에 도전 하셨다. 먹기도 힘든 귀한 계란 몇 개와 이상한 것들을 넣으시고는 밀가루를 반죽하시더니, 손으로 길죽하게 밀어 동그란 고리 모양을 만드셨다. 방 아궁이 연탄불 위에 기름솥을 얹으시고는 반죽을 넣어 튀겨 내셨다. 아~ 그 달콤하고 구수한 도너츠 익는 냄새란!! '기름 튀긴다' 나무라시는 어머니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삼남매는 모두 아궁이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약간 갈색이 되도록 튀겨 놓은 도너츠가 식기도 전에 집어들고 나간 남동생은 어머니께 등짝을 맞으면서도 '앗! 뜨거!'를 외치며 싱글벙글이었다. 그저 침만 삼키며 어머니의 눈치만 보고 있던 나와 막내는 남동생의 혀를 빌어 도너츠 맛을 느꼈다.
그 날의 도너츠 익는 냄새. 달콤하고 계란 맛이 많이 나는 도너츠는 냄새 만큼이나 정말 맛있었지만, 정말 딱딱했다. 식은 뒤의 도너츠는 돌과 같이 딱딱해서 이빨로 갉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도전하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도너츠였다. 딱 한 번, 우리 엄마가 만드신 도너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죽을 너무 오래해서 그렇게 딱딱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딱딱한 도너츠가 가끔 생각나는 것이다. 집에서 반죽을 오래 치대어 도너츠를 만들어 보지만, 그때 그 맛은 안 난다.
나는 가끔 외로울 때, 엄마의 그 딱딱한 도너츠를 생각한다. 달콤하면서도 구수했던 도너츠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지친 어깨를 가진 고단한 내 동생의 마음에 엄마의 달콤한 도너츠를 선물하고 싶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버리는 시간 때문에 휑한 마음을 가족의 사랑으로 채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