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다녀온 남편이 안색이 좋지 못하고 기운도 없어 보이더니 저녁 먹자고 부르니 대답이 없다. 평소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혹시 동치미 국물이 있냐고 묻는다.
이유인즉 피로연장에서 과식을 했는지 오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아무 기분이 나지 않는단다.
남편이 유난히 김치종류를 좋아해서 몇 년 전에는 동치미를 직접 담가보았었는데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았다. 개운하면서도 시원하고 칼칼한 맛, 십년묵은 체증까지 내려갈 것 같은 맛,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표현할 수 없는 그 맛 매년 요맘때쯤이면 동치미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며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셨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색 바랜 엄마의 목소리는 막걸리보다 톱톱하다. 반가워하며 잘 지내냐고 묻는 인사말을 급히 자르며 엄마 건강은 어떠냐 식사는 잘하느냐 물으니 그럭저럭(견딜만큼) 지낸다고 하신다. 혹시 동치미 담갔냐고 물으니 올해는 배추포기가 잘 차지 않아 김장이 늦어져 아직 익을 때가 안됐다고 하셨다. 그러면 담그는 법을 알려 달라 했더니 깜짝 놀라시며 여기서 가져다 먹지 않을 거냐고 되묻는다. 실은 올해부터는 내가 담아 먹으려고 직접 농사지은 무우와 배추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 보관해 뒀는데 과연 엄마 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하는생각이 되어 계속 미루다 보니 겨울이 다 지나가게 될뻔한 것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화들짝 놀라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무얼 말하는지 알 것 같다.
당신 살아생전엔 뭔가 해주고 싶은데, 거부하는 것 같아 서운한 것이다
그런게 아니고 엄마 몸도 성치 않은데 힘들까봐 배워서 해보려고 했더니 그러면 담그는 법을 알려줄 테니 올해는 엄마가 담근 것을 가져다 먹으라고 하셨다,. 알았다는 대답을 해놓고 난 벌써 항아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준비해둔 재료도 있겠다 실험을 해볼 요량이다.
그 속에 깨끗이 씻은 자그마한 무우와 배추를 한 켜놓고 굵은 소금 솔솔 뿌리고 그 위에 반복해서 배추와 무우를넣고 뚜껑을 덮어둔다 3일뒤에 베 주머니에 사과,배,생강,마늘(천연재료)등 각종 양념을 넣고 묶어 넣은 다음 적당히 염도를 맞춘 물을 붓고 그 위에 대나무 가지를 구해다 돌려 넣고 1개월 정도 익을 때를 기다리란다. (칼칼하게 먹고 싶으면 소금물에 삭힌 고추를 넣으라 하셨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 친정 집은 산속 외딴집에 아궁이가 있는 예전부엌에 항아리를 보관하는데 난 마땅한 장소가 없어 그늘에다 보관할 예정이다.
그 맛의 비결이 보관장소에 있는 걸까, 아니면 반세기이상 담가온 경험과 손맛의 조화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일까?
기다려보자 과연 비슷한 맛이라도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언젠가 알 수 없지만 자식들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면 꼭 성공해서 비슷한 맛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 나의 엄마는 팔순이 한참 지나신 분인데도 직접 농사지으시며 그 옛날 집에서 홀로 살고 계시다 . 적적하고 힘든 몸이지만 자식생각하며 힘을 낸다는 나의 엄마" 죄송하고 감사해요. 올해는 엄마표 동치미 보내주시는 날 예전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고구마 한솥 삶아 언니동생 불러놓고 도란도란 추억을 반찬삼아 먹어봐야겠다
고은순/전북 군산시 경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