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나보다도 남편이 더욱 그리워할 그것은 수제비.
임신하고 처음 맞는 여름, 친정에 갔더니 어머니는 입맛없는 딸을 위해 호박이며 감자등 야채를 넣어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친정이지만 앉아있을 수 만은 없어 주방을 드나들며 엄마의 수제비가 맛있으니 많이 달라고 부탁한 나의 수제비는 일찌감치 상위에 자리를 잡았다. 오가며 상을 차리는 사이 상에 올려둔 내 몫의 수제비가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남편의 수제비가 양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내 수제비와 자신의 수제비그릇을 바꾼사람이 다름아닌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뾰루퉁해졌다. 정량소식만 하던 사람이 나의 양많은 수제비를 가져갔으니 필시 임신한 아내를 골탕먹이려는 것이란 짐작에 툴툴거리며 친정식구들까지 면구스럽게 했는데 알고보니 남편도 수제비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리했다는 것이다.
40여년 전 어린 시절, 밖에서 뛰어놀다가 집에 들어가보니 누나들끼리 수제비를 해먹고 남동생인 남편의 몫은 남겨놓질 않아 울고불고 했단다. 울기라도 하면 혹시나 수제비를 해줄까했는데 더운 여름날 새로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끓이는 것이 힘들었을 어린 누나들은 그저 모른척 할 밖에. 그길로 남편은 유달산 높은 곳에 가서 죽기로 했단다. 누나들이 수제비를 안해 준 것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주리라. 굳은 마음을 먹고 유달산의 땅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는데 어느새 본능적으로 몸의 중심을 잡아가며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죽겠다고 몸을 날려서는 살겠다고 넘어지고 구르며 지상에 안착한 남편에게 이미 수제비생각은 온데간데 없었다. 얼굴과 온 몸에 눈물,콧물자국과 흙먼지가 범벅이 되어 들어간 집에는 누나들이 무심하게 TV만 보고 있더란다.
‘누나들, 내가 지금 죽으려고 했단 말이야, 수제비 때문에’라는 말을 수제비대신 고픈 위장속으로 꼴까닥 삼켰을 남편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더운 여름날이다.
그 때 그 시절 유달산 꼭대기에 비장한 모습으로 서있었던 꼬마에게 수제비를 선물하고 싶은 여름날의 막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