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머님, 저도 하나 주세요' 할껄."
19개월 외손주가 맛있게 잠을 자는 모양새를 보고 엄마가 옛 생각이 나는지 말을 꺼내신다. 잠든 아기의 포동포동 볼살이 오른 얼굴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신게다.
갓 시집왔던 33년전 엄마는 시부모님과 시누 아이까지 한 집에 모여사는 대가족 집에서 시집살이를 하셨다. 임신 중이어서 이것저것 먹고 싶은게 많은 데도 시어른들 눈치가 어려웠고, 터질 듯 통통한 다섯살 시누 아이가 혼자 삶은 계란을 여섯 개나 먹는데 그 옆에서 꼴딱꼴딱 침만 삼켰다고.
'에이. 그게 뭐 어렵다고. 어머님 저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먹지'하고 철없는 며느리의 대표주자인 내가 거든다. 입은 많은데 살림은 넉넉치 않았던 시집살이에서, 엄마는 유독 먹을 것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많이 토로하신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음식을 만들었더니 입 짧은 우리 자매가 김치만 먹고 있더란 이야기, 임신 중에 먹고 싶은 음식 못 먹고 넘겼던 많은 순간들 등등. 특히나 딸기가 귀했던 시절, 딸기를 특히 좋아하던 어린 내가 멀뚱멀뚱 보는데도 시댁 식구가 딸기를 사와 혼자 먹고 있더란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제 올해 환갑을 맞으시는 엄마에게 달라진게 있다면, 그 시절 시댁에서 입었던 서운했던 마음과 상처입었던 자아를 웃으며 '힐링'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게 그럴껄 그랬다' 하면서. 이제 딸기를 어른보다 더 광속으로 흡입하는 손자가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로 '타임슬립' 할 수 있다면, 사촌언니 옆에서 슬그머니 삶은 계란 한 알 집어서 엄마에게 건네고 싶다. 보행기를 타고 뽈뽈뽈 달려가서 딸기 한 알 집어먹고 엄마 한 알 갖다줘서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티 안나게 한 알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