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어떤 음식에 대한 좋음, 싫음 혹은 남다른 추억등을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가난한 가운데 먹던 쑥개떡이라든가 비올 때 쪄 먹던 감자나 부침개, 추운 겨울날에 김장김치 송송썰어 먹던 비빔국수 등 또는 먹고 탈이 나 고생을 심하게 해서 두 번 다시 그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 중학교 선생님 중에도 그런 분이 계셨는데 선생님은 국사를 가르치시는 중년의 키가 작고 배가 많이 나오고 얼굴이 세숫대야만 한게 아주 후덕한 인상으로 성격도 아주 좋으신데다 늘 얼굴엔 웃음을 짓고 다니셨다. 그러니까 복 많게 생긴 맘씨 고운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선생님은 늘 검소하셨고 식성이 좋으셨는데 단 한가지, 닭 백숙을 드시지 않으셨다. 아니, 싫어하셨다. 닭 백숙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살짝 찌푸리기도 하셨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1년에 몇 번 밖에 되지 않는 1970대에 고기를 안드신다니? 이상했고 이해 할 수 없었다. 고기 냄새만 맡아도 화났던 기분이 누그러질 정도로, 정말 행복할 정도로 고기가 귀했던 시절에... 어느날 선생님의 닭백숙 얘기를 듣고 나서는 중학교 2학년인 어린 나이에도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1960년 ~ 1970년대에는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봄,가을에 한번 방과 후에 각 학생의 집을 담임선생님께서 방문, 부모님을 만나 뵙고, 학생과 가정, 교육, 진로 등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상담하는 제도였는데 어느 가을 선생님께서 부모님께서 농사를 짓는 한 아이의 집을 도착한 것이 오후 3시쯤 이었더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교육 받으신 아이의 부모는 감사하고 송구한 마음에 얼마 전 추수한 햅쌀로 밥을 짓고 마당에 놓아 먹이던 암탉 중 가장 큰 놈을 그 자리에서 잡아 백숙을 하셨는데, 오후 5시쯤 되었단다. 구수한 햅쌀밥 익는 냄새와 닭백숙 냄새에 살짝 시장기가 돌아 내심 ‘으흠 오늘은 포식을 하나보다’하고 기다리던 중 밥상이 들어왔고 함께 하자는 선생님의 권유에 펄쩍 뛰시며 “어디 감히 선생님과 겸상을... 어서 드시고, 더 드시라” 닭다리를 하나 떼어 손에 들려 주시더란다. 해서 받은 그 닭다리를 한입 베어 물고 씹는 순간 욱!, 속이 메스꺼워지며 삼킬수가 없더란다. 밥상 맞은 편에서는 부모님 두 분이 흐뭇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시며 자꾸 더 잡수시라고 손짓하시고 몇 번인가 이제 그만 하다가 부모님께서 막무가내로 다 잡수셔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정말 억지로 성의가 너무 고마워서 그 순박한 분들 정성을 거절하지 못해서, 그걸 다 잡숩고 집에 돌아가 탈이 나서 며칠을 고생하셨는데 그 이유인 즉, 그땐 지금과 달리 설탕이 귀할 때라 부모님께서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특별한 백숙을 대접할까 의논하다‘그래 설탕을 넣어드리자 귀한거니깐 많이’해서 설탕을 듬뿍 넣은 닭 백숙을 드린 것 인데, 선생님께서 드실 음식이라 간도 안봐서 너무 달아 먹기가 힘들다는 것을 모르셨던 것이다. 어쨌든 그 후로 선생님께선 가정방문을 가셔도 식사는 사절. 인생에서 닭 백숙은 안녕! 이 되어 버린 것이다.(과연 그 맛은 어
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