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가장 큰 충격은 바로 ‘매점’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달려가서 빵이나 음료수를 마음껏 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매점을 갈때면 '이제 나도 어린애가 아니라 어엿한 중학생‘이라는 자부심이 마구마구 들었죠.
특히나 매점에서 흘러나오던 냄새는 어찌나 고소하던지. 바로 매점 아주머니가 굽는 햄버거 냄새였답니다. 당시만 해도 햄버거의 위상은 지금과 극과 극! 지금은 싸구려 음식의 대표선수가 되버렸지만 그때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고급음식을 매일매일, 그것도 보통 햄버거 값의 반도 안되는 몇백원에 사먹을 수 있다니!
그렇습니다. 아무리 지금보다 물가싼 이십여 년전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도 몇백원짜리 햄버거 패티는 지금 아이들이 먹는 두툼한 고기 패티가 아니라 어묵과 소시지의 중간쯤에 있는 정체불명의 ‘육류’였지요. 그럼에도 그 적당히 기름지면서 고소한 냄새와 맛은 얼마나 황홀하던지요.
그래서 저의 도시락 멤버였던 짝과 뒷자리 친구 셋은 2교시가 끝나면 매점으로 직행해 햄버거를 사먹었습니다. 정말 매일매일 사먹었습니다. 며칠 먹으면 질리기도 할 법한데 한참 성장기에 있던 저희 사전에 먹을 거 앞에 두고 싫증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값싼 햄버거였지만 매일 먹다보니 나중에는 용돈이 감당안돼 종종 준비물을 포기하는 결단까지 서슴지 않았지요.
그렇게 한 한기를 지내고 난 다음 우리 셋에게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이름하여 “역도부 삼형제”. 수업시간에 킬킬거리며 잡담을 하다가 선생님으로부터 “거기 역도부 삼형제 조용히 못해?” 꾸중을 들은 뒤 얻은 별명이었죠. 왜 하필 역도부였을까요? 우리 학교에는 역도부도 없었는 데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몇 달동안 매일 먹은 햄버거 때문에 성장기에 있던 우리 소녀들은 엄청나게 성장해버린 겁니다. 위로가 아니로 옆으로 말입니다. 기골이 장대한 소녀 셋이 뭉쳐 앉아 있으니 역도부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만 했죠. 다행이도 2학기에 들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셋의 햄버거에 대한 열정은 식어 버렸고 덩치도 어느 정도는 원상복구가 됐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팔지 않을 싸구려 햄버거였지만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패티가 구워질 때의 향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경란아, 혜욱아 잘 지내지? 언젠가 같이 모여 그때 먹던 정체불명의 햄버거를 같이 먹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