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를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조회수 14456 추천수 0 2012.10.15 13:47:13
난 고모 한 분에 큰 아빠, 작은 아빠가 다섯분인 집의 첫 손주이다.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던 터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참 많다.

엄마가 시집오셨을 때부터 첫손주는 딸이었으면 하셨던 터라 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유별나게 날 예뻐하셨다.

항상 마실 나갔다 돌아오실 땐 빈손으로 돌아오시는 법이 없이 과자를 들고 오셨고, 생선이나 게를 좋아했던 날 위해  손수 살을 발라주셨다.

뿐만 아니라 내가 동네에 나가 놀다가 다칠까봐  따라다니셨고, 더운 여름날 내가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해주셨다.

인형놀이를 하고 싶어하면 기꺼이 당신의 양말을 내어 인형옷을 직접 만들어 주셨고,  같이 쪼그리고 앉아 사금파리로 소꿉놀이도 해주셨다.

당신을  위해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실 땐 꼭 거스름돈 50원을 남기라 하시고 눈깔사탕이나 종이인형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런  엄청난 사랑으로 세상을 독차지하며 살게 하시던 분이 일흔을 넘어 뇌출혈을 겪으셨다.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도 항상 데리고 다니시며 사주셨던 음료수 한 병....

그 달콤함에 마냥 신나 따라 다녔는데 당신의 병은 점점 심해지셨다. 마지막엔 거의 식사를 못하셨기에 식사 대신 드셨던 마당 뒷편에  쌓이던 빈 두유병들....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위해 음식조절을 하려다 보니 우유보다는 두유가 좋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건 수입콩에다 단성분이 들어있어 직접 만들어 주려 여기저기 요리법을 찾다 보니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내게 엄청난 사랑을 주셨고, 그 나이때의 어른들을 뵈면 꼭 당신을 생각나게 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난 할아버지께 두유한병 사다드린적이 없다.돌아가실 때쯤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에 신나 당신께 소홀해 돌아가셨을 때 참 많이도 울었는데 막상 아무것도 해 드린게 없다는걸 이제야 깨달았다...

콩밥을 싫어해 콩을 골라내던 내게 "밭에서 나는 우유"라며 한알 한 알 내입에 넣어주시던 당신의 건강을 위해 두유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81467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89262
181 <맛선물>한번도 먹어본적 없는 음식 file kesuoh 2012-10-31 14856
180 <맛선물>콩나물무침 vzzing 2012-10-29 14710
179 [맛선물] 제발 받아줘 namij 2012-10-29 15584
178 요리담당 기자의 삶 담긴 ‘맛있는 식탁’ imagefile 끼니 2012-10-15 27816
» 두유를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negonego 2012-10-15 14456
176 <맛선물> 우린 역도부 삼형제! dmsgud100 2012-10-12 15436
175 <맛선물>불고기전골의 자비 sabet1105 2012-10-04 14965
174 낭화를 아시나요 ? jhk9324 2012-09-29 15043
173 맛선물 wang0827 2012-09-28 15065
172 <맛선물> 영원히 못 잊을 닭백숙 59pigpig 2012-09-26 14704
171 <맛선물> 계란 한 알, 딸기 한 알 prup 2012-09-24 14829
170 <맛 선물> 은희가 은희에게 takeun 2012-09-22 14687
169 [맛선물] 아빠와 함께 먹고 싶은 미역국 octobermj 2012-09-19 16824
168 <맛 선물> 계란찜을 먹는 두 가지 방법 중전 2012-09-16 14936
167 <맛선물>아름다운 이웃에게 육개장 한 그릇씩을~~ com6210 2012-08-31 14470
166 [맛선물]조일병 기다려라! 이번 주말, 엄마가 밥차 몰고 면회간다! ggossi1 2012-08-28 14632
165 <사랑은 맛을 타고> 케냐의 맛 jangmi1514 2012-08-27 16164
164 [맛선물] 엄마의 떡볶이 moon5799 2012-08-24 15069
163 <맛선물>"얘들아, 김밥이다." file viveka1 2012-08-24 14353
162 <맛선물>수제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dunamom 2012-08-20 14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