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선물)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엄마의 도너츠

조회수 12759 추천수 0 2012.12.24 20:58:37

"분위기는 괜찮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는 무뚝뚝함과 고단함이 묻어나왔다. 19일 대선이 끝나고,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을 한 다음날의 전화였다.

"왜, 그 동네는 축제 분위기냐?"

"여기도 뭐.. 어쨌든 경남은 그래도 경북보다 많이 나왔으니까... 알았어. 끊어."

지금 통영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힘이 별로 없었다. 제대 후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며 지방대 졸업하고 여기저기 취직을 해 보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 한 방 터트리겠다며 시작한 주식은 조금 모아둔 돈까지 날려버렸고, 결국 부모님에게까지 손을 벌려 갚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시 시작이라며 타지에 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 쉽지는 않은지, 매번 전화 목소리는 고단하다. 열 몇 시간씩 일하다가 쉬는 날에는 잠만 자는 동생. 그 고단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집은 삼남매다. 중동 건설붐을 타신 아버지는 사우디로 일 가시고,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림을 하셨다. 어느해 겨울인가? 친구네 집에서 도너츠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본 내가 집에 와 한참을 졸랐던 모양이다. 막걸리 찐빵을 주로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는 내 성화에 못이겨 도너츠에 도전 하셨다. 먹기도 힘든 귀한 계란 몇 개와 이상한 것들을 넣으시고는 밀가루를 반죽하시더니, 손으로 길죽하게 밀어 동그란 고리 모양을 만드셨다. 방 아궁이 연탄불 위에 기름솥을 얹으시고는 반죽을 넣어 튀겨 내셨다. 아~ 그 달콤하고 구수한 도너츠 익는 냄새란!! '기름 튀긴다' 나무라시는 어머니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삼남매는 모두 아궁이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약간 갈색이 되도록 튀겨 놓은 도너츠가 식기도 전에 집어들고 나간 남동생은 어머니께 등짝을 맞으면서도 '앗! 뜨거!'를 외치며 싱글벙글이었다. 그저 침만 삼키며 어머니의 눈치만 보고 있던 나와 막내는 남동생의 혀를 빌어 도너츠 맛을 느꼈다.  

그 날의 도너츠 익는 냄새. 달콤하고 계란 맛이 많이 나는 도너츠는 냄새 만큼이나 정말 맛있었지만, 정말 딱딱했다. 식은 뒤의 도너츠는 돌과 같이 딱딱해서 이빨로 갉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도전하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도너츠였다. 딱 한 번, 우리 엄마가 만드신 도너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죽을 너무 오래해서 그렇게 딱딱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딱딱한 도너츠가 가끔 생각나는 것이다. 집에서 반죽을 오래 치대어 도너츠를 만들어 보지만, 그때 그 맛은 안 난다.

나는 가끔 외로울 때, 엄마의 그 딱딱한 도너츠를 생각한다. 달콤하면서도 구수했던 도너츠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지친 어깨를 가진 고단한 내 동생의 마음에 엄마의 달콤한 도너츠를 선물하고 싶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버리는 시간 때문에 휑한 마음을 가족의 사랑으로 채워주고 싶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80329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88132
181 <사랑은 맛을 타고> "아버지 고기" pedori 2011-11-13 13359
180 일곱살의 대오각성 file lmijin0477 2011-12-19 13361
179 외할아버지의 특별한 레시피 lfamily23 2012-02-24 13369
178 엄마! 우리 거지같아 jayazzim 2012-04-13 13400
177 엄마의 손 맛. 최고의 동치미... cks419802 2012-06-07 13404
176 와플보다 떡볶이 jester07 2012-06-04 13462
175 콩밥 한 그릇 hl5yul 2012-06-21 13476
174 "사랑은 맛을 타고"- 젊음의 허기와 새우젖의 달콤함 guyhwayaa 2012-06-21 13499
173 생신상을 차려드리고싶은 딸 chow88 2012-07-20 13518
172 [이벤트응모] 외할머니 보다 단하나 lee34070 2013-01-11 13601
171 어떤 국적의 잡채 wzree 2012-05-28 13664
170 [맛선물] 우리집 만두의 비밀 sagemo 2012-12-26 13665
169 <맛선물> 도시락, 지옥철과 함께 사라지다 leedmeen 2013-01-26 13697
168 당면과 냉면은 친구? sunkeung 2011-10-27 13757
167 <맛 선물>막 입대한 아들에게 pungum 2013-01-15 13810
166 눈물 & 콧물의 베트남 쌀국수 eurim 2012-03-18 13824
165 맛선물<오묘한 빵맛에 취하니> chai1007 2013-02-22 13836
164 엄마, 장국 드시고 힘내세요! jnsoo711 2013-02-07 13840
163 (맛선물) 어릴적 내 멀미약은????...^^ Kim991241 2012-12-21 13895
162 <사랑은 맛을타고>밥은 어떻게 하지?^^ hamyr23 2012-06-09 13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