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만두 한 그릇의 건너편 자리엔 항상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당신의 손으로 직접 빚은 만두였다. 크기는 어른 주먹만 한. 겨울이 끝날 때쯤 주로 만드셨다. 신김치를 처리하는데 만두만큼 적당한 대안은 없다. 한두 해 지날수록 내가 먹던 만두의 개수는 점차 늘었다. 손자가 먹는 만두의 개수가 늘어나는 만큼 할머닌 나를 기특해했다. 당신에게는 그랬다. 단지 먹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손자는 귀여워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사내란 존재의 특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만두를 열 몇 개까지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먹고 감히 뜨듯한 아랫목에 누워 꿀맛 같은 잠을 청했다.
손자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닌 병을 얻었다. 모든 힘을 다해 병과 싸울 준비를 했건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몇 개월만의 투병으로 할머닌 자리를 보전했다. 집 앞 산책도 힘들었다. 철없던 손자는 할머니의 병세보다는 할머니가 직접 빚어주는 만두를 더 이상 못 먹는다는 게 더 아쉬웠다.
할머닌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그해를 단지 이틀 남겨놓고 할머닌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한 해의 끝자락에 손자도 덩그러니 남겨졌다. 손자는 성장해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여자에게 엉뚱한 욕심을 키웠다. 아내가 될 이 사람이 세상 모든 음식엔 젬병이어도 괜찮으니, 만두 한 그릇은 할머니만큼만 만들었으면 하는. 할머니의 만두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어머니께 며느리될 지금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뜬금없는 소리를 해댔다. ‘어머니, 만두 만드는 것 좀 이 사람한테 가르쳐주세요.’ 무심한 어머닌 아들의 바람을 아직은 귓등으로 흘린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결혼하고 벌써 5년이다.
아내와 나는 아직 만두 한 개를 직접 만들 줄 모른다. 염치없는 아들은 김장김치가 푹 익어 신맛이 나기를 기다려 어머니께 부탁한다. ‘어머니, 만두 좀 만들어주세요.’ 어머니가 만두를 빚을 때 아들이 하는 일이란 잔심부름 정도다. 그나마 방해된다고 어머니와 아내의 타박이 돌아오건만, 펄펄 끓는 국물에 주먹만 한 만두가 담겨 나올 장면을 상상하면 즐겁기 만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손자는 이제는 만두 열 몇 개까지 먹지 못한다. 만두 한 그릇 직접 빚어드리는 게 소원이었지만, 세월은 무심하게도 할머니를 너무 빨리 데리고 가버렸다. 바람이 있다면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뵈어 뜨끈한 만두 한 그릇 함께 먹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