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도 익숙해졌어야 할 회사 일이 버거워 헉헉거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질 않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모르고 지내던 때였다. 사실 그 시절이 힘들었던 건 일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병 때문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앓고 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이 글썽인 채로 고객과 상담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속이 불편할 때마다 우유 한 컵이면 괜찮다는 엄마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몸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엔 가족들 모두 너무 바빴다. 큰 맘 먹고 대학병원에서 받은 정밀검진 결과, 위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이고 수술을 해도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고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고통과 싸움을 하느라 지쳐있는 엄마를 보면서도 그 순간이 끝이 정해져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안 건 나중의 일이었다.
음식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어느 날, 엄마는 죽을 먹고 싶다고 했다. 밥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내가 죽을 끓여야 했는데 죽 끓이는 법을 물어볼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엄마한테는 입을 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물이 한가득인 그릇에 통통한 밥알이 둥둥 떠다니는, 얼렁뚱땅 흉내만 내서 들여간 죽을 엄마는 삼키지 못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죽을 엄마에게 끓여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할 일이 많지 않은 걸 다행스러워 하는 내게 그 일은 삼키지 못한 가시처럼 늘 마음에 걸린다. 이제 얼마 후면 나도 그 때 엄마의 나이가 된다.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엄마, 저 이제 죽 끓일 줄 알아요. 제가 끓인 죽 한번 드셔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