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라면의 위력

조회수 17071 추천수 0 2012.06.25 00:03:36

무척이나 잘 보이고 싶었다.

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한 5개월 남짓 되었던 그 때, 난 그에게 무진장 잘 보이고 싶었다.

사실 남자친구는 내가 살던 허름한 자취방의 나보다 무려 네 살이나 많은 옆옆방 오빠였다.

대학교 2학년, 돈이 넉넉치 않던 나는 방이 여러개 있는 한옥집에서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였다.

난 5번방, 그와 두 명의 친구들은 7번방의 자취생들이었다.

아주 우연찮게, 그리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와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매일같이 부대끼던 우리는 결국 연애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난 요리하는게 너무 재미없고 할 줄도 몰라서 집에서 밥을 거의 해먹지 않으며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옆옆방, 즉 7번 방의 오빠들은 저녁마다 찌개를 끓이고 가끔은 반찬도 만들고 주말에는 함께 장을 보며  남자들끼리 참으로 잘도 해먹고 살아가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끼니를 대충 떼우던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저녁마다 나를 불러 7번 방 오빠들의 밥상에 끼워주었다. 그렇게 나는, 7번방의 하숙생이 되어 6개월 가까이를 그 방 오빠들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2004년을 신나게 보냈었다.

연애 초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요리를 해주기로 하였다. 어디서든 맛볼 수 없고 특별하지만 어렵지 않은 그런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짜내다가 획기적인 요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커피라면'이었다. 나 역시도 한 번도 맛보지 않았지만 만들기도 쉬울 것 같고 웬지 맛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너무 독특해서 남자친구도 한 번도 못 먹어 보았을 것 같고...

믹스 커피 세개를 끓는 물에 넣어 육수를 만들고 라면 면발을 집어 넣은 후 몇 분 끓인 후

조용히 남자 친구를 내 방으로 불렀다.

오빠 주려고 만들었다며 고동색 비슷한 색을 띄는 '커피 라면'을 내밀었다.

'커피라면의 위력' 은 대.단.하.였.다.

식겁한 남자친구의 얼굴에서는 공포물을 본 것 같은 표정이 지어졌고

나의 과친구에게는 '우웩'이라는 비명까지 유발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나의 첫 요리는 비록 상대방을 어이없음으로 무력화 시켰던_굴욕의 요리였지만, '맛'보단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던 덕분에 이후 우리는 7년을 연애한 후 결혼에 골인하였다.

과연 '커피라면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박은전/ 충남 천안시 두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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