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마솥에다 밥을 지어먹었다.
우리 집도 가마솥에다 밥을 지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아궁이에 불 때는 일만 도맡던 내가 죽도 밥도 아닌 죽밥을 지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부지깽이도 덤벙댄다던 그해 가을 일요일, 점심밥을 먹은 가족들은 논으로 벼를 베러 갔다.
집에 혼자 남는 나에게 엄마는 밥 짓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저기 시렁에 있는 삶은 보리쌀을 여기 이 바가지로 하나 퍼서 솥 밑에다 깔아라.
여기 이 쌀은 씻어서 그 위에다 가만 놓고,
물은 손을 펴서 손등이 잠길락 말락 부으면 된다.“
상당히 긴장되었지만 엄마가 가르쳐준대로 하면 될것 같았다.
해가 앞산 중턱쯤에 걸릴 무려 밥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섰다.
솥을 깨끗이 씻고 행주로 솥 바닥 물기까지 말끔히 닦은 뒤, 엄마가 가르쳐주신 대로 차근차근 삶은 보리쌀과 쌀을 솥에 앉혔다. 그때 문득 찬장에 넣어둔 식은 밥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밥을 물 붓기 전에 솥에다 넣으라고 하셨는지 물 부은 후에 넣으라고 하셨는지 도통 생각이 안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리쌀도 한번 삶았고 식은밥도 한번 삶은 거니까, 식은 밥은 삶은 보리쌀 비슷하게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식은 밥덩어리를 일일이 손으로 으깨어 솥에 고루 펴고, 물을 손등이 잠길락 말락 부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물을 제대로 부었나 궁금하였다. 밥 끓는 소리가 나자 물이 어떻게 되어가싶어 솥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물이 좀 많은 것 같았다.
불을 많이 지피면 물이줄어들겠거니싶어 밥에서 타는 냄새가 살짝 날때까지 불을 지펴도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찌할바를 모르고 마당을 한바퀴 돌고 들어가서 솥 안을 들여다 보아도 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자 밥은 더 이상해져 죽인지 밥인지 모를 상태가 되어버렸다.
엄마한테 혼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밥을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그때는 음식이 귀한 시절이라 잘못지은 밥을 버린다는 것을 상상 할 수 없었다.
집에 남은 막내가 밥을 지어놓았을 거라 믿었는지, 가족들은 다른 날보다 더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우물에서 손발을 씻는 동안 상을 차리고, 그 죽밥을 그릇에 담았다.
밥상앞에 앉아 가슴 조이는데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밥 맛있구나~! 잘 지었다.
야단 아닌 뜻밖의 칭찬을 해주셨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도 더 지났다. 그렇지만 칭찬과 함께 엄마는 내 가슴에 살아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