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많이 다치셨습니다.
그날도 두분은 읍내 복지관에 사이좋게 출근(?)하여 구내식당에서 1500원짜리 식사도 맛있게 하시고
오후 운동을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복지관 에이스’로 불리던 엄마가 탁구 연습 도중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히신 거죠.
다행히 머리에 이상은 없었지만 예전에 다쳤던 허리를 또 다치신 거라 꼼짝없이 누워 계셔야 했습니다. 처음 1주일은 일어나시지도 못해서 누운 채로 식사를 하셔야 했어요. 누워서는 병원에서 나오는 밥을 드실 수 없으니 아빠가 매 끼니 김밥을 사오시면 절반 정도 드시는 게 전부였습니다.
간신히 앉으실 수 있게 되자 병원밥을 조금 드실 수 있었는데 입맛없다고 많이 못드셨지요.
아빠는 옆에서 안타까워 하면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하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올해 78세.
주방일은 해본 적이 없는 보통의 ‘옛날 아빠’입니다. 몇해 전 엄마가 외국에 나가실 일이 있을 때 보온밥솥으로 밥하는 방법을 배우신 게 전부랍니다. 그때도 반찬은 엄마가 준비해두신 밑반찬과 김치로 해결하셨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3주 동안 내내 아빠는 엄마가 덜어내시는 밥을 드시면서 지내셨습니다.
매실 수확하랴, 복지관 동호회 회의하랴, 매일 세 차례 병원에 들러 엄마 끼니 챙기랴(누가 부축하지 않으면 일어나시지 못해요.) 바쁘게 다니시느라 그새 살이 좀 빠지셨더라구요. 제가 걱정하니까 아빠는 배를 쓰다듬으시며 ‘엄마 덕분에 다이어트한다’며 웃으셨지요.
저는 멀리 산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 뵙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입원하시던 주말에야 간신히 내려가면서 엄마가 드시기 좋도록 조그맣게 만든 깻잎쌈밥과 방울토마토를 조금 챙겨갔어요.
아빠가 좋아하시더군요. 마침 곧 식사시간이라 병원 복도가 분주해지더니 식판이 하나씩 들어왔죠.
시골의 작은 병원이라 그런지 제가 보기에 반찬은 좀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속상해하니까 아빠가 ‘비장의 반찬’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꺼내신 것은 마른 멸치 한 통이었습니다. 아침에 전자레인지로 돌려 살짝 구운 것인데 엄마가 잘 드신다며 조리경험상 ‘1분이 최적의 시간’이라며 한참 설명해주셨어요. 비법을 전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농담은 했지만 마음 속이 조금 아렷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따뜻해지기도 했구요.
‘이만큼이라도 아빠가 건재해서 엄마를 돌보고 있으니 멀리 사는 자식들아 너무 걱정말아라’하는 무언의 격려 같아서요. 어린 아들이 하교 하기 전에 집에 가서 기다리라며 등을 미시는 통에 다시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병실 문을 나서면서 뒤돌아보니 엄마와 아빠는 병원 식판을 사이에 두고 밥 한공기를 반으로 갈라 나눠 드시고 계셨어요. 중앙에는 마른 멸치가 위풍당당하게 메인 반찬 역할을 하고 있었구요. 비싼 한정식 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진수성찬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싸간 쌈밥덕분에 조금 더 든든한 한끼가 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