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해산물들과 짭짜름한 바다 그리고 구수한 사람냄새가 매력적인 부산!
이 도시의 색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자갈치 시장은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풍요롭게 수놓아준 소중한 장소입니다.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과 자갈치 아지메들의 구수한 사투리는 많은 분들이 자갈치 시장만의 맛과 분위기를 잊지 못하게끔 하는데요. 저 또한 이른 아침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축축한 자갈치 시장 바닥을 누비며 생선을 골랐던 옛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지메가 펄펄 살아움직이는 싱싱한 놈을 골라다가 세월이 묻어나는 능숙한 손놀림의 손질을 하시는 동안 언니와 저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시장곳곳을 구경하기 바빴는데요. 통통한 해삼, 납작한 가자미같은 만만해 보이는 것들을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가끔 눈에 띄는 작은 냉동상어를 숨죽이며 구경하는등 시장을 놀이터삼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답니다.
특히 우리 가족이 당시 즐겨먹었던 아나고 회를 주메뉴로 정한 날이면 긴 몸이 마치 뱀같다고 뱀순이 뱀돌이라 이름 붙여준 그 수족관의 친구들인지는 꿈에도 모른채 식탁 위 하얀 눈송이처럼 보슬보슬하게 손질된 아나고 회를 어머니만의 특제 초장에 푹 찍어 정신없이 먹곤 했었어요. 그리고 회를 먹은 날의 하이라이트는 아버지께서 손수 끓여주신 매운탕!
아나고 대가리와 연결된 긴 껍질을 그대로 넣은 뒤 무성의한 듯 칼로 쓱쓱 친 무와 파로 시원함을 더한 다음 손으로 대충 툭툭 뜯어 넣은 방아잎의 톡 쏘는 향이 비릿내를 잡아주기만하면 아버지표 매운탕이 뚝딱 완성됩니다.
기다란 아나고 껍질 덕분에 당시의 비쥬얼은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지는 모양새였지만 미끌미끌 긴 아나고 대가리를 초등학교 갓들어간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통째로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며 껄껄 웃으시던 어른들의 반응이 마냥 좋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그때가 그리우신지 사위들을 불러 모아 아침부터 서둘러 사 오신 싱싱한 자갈치 시장표 회를 손수 떠주시곤 하시는데요. 한 상 거하게 차려놓으시곤 니 와이프가 어릴 때 이 징그럽고 긴 아나고를 쪽쪽 빨아 먹었었다고 웃으며 얘기하곤 하십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버지표 뚝딱 매운탕맛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맛이랍니다. 오늘은 특히나 고향 부산과 아버지의 매운탕 향이 그리워 지는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