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만의 짜장면 >
저희 엄마는 고기를 못 드십니다. 요즘 유행하는 채식주의냐고요? 아닙니다. 저희 외할머니도, 이모들도 고기를 다 못 드십니다. 유전적인 것도 있지만,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고기나 계란이 있으면 아들 먼저 먹으라고 양보한 거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어른이 되어 비로소 고기를 먹으려 하니 역해서 넘어가질 않더랍니다.
그런데 엄마가 식구들 중 유독 심하셔서 생선, 계란도 못 드십니다. 유일하게 드시는 남의 살은 대게 하나뿐이랍니다. 그러다보니 외식할 때 제약이 많죠. 한번은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묵묵히 부추와 맨밥을 씹어 드시는 엄마를 보다 못해 음식점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옆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하나 사온 적도 있습니다.
고기 안 먹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주변 사람과는 달리 정작 엄마 본인은 채식주의자 생활이 썩 만족스러우신 모양입니다. 오히려 채식 덕분에 피부도 좋고 건강하시거든요.
하지만 엄마에게도 드시고 싶은 것은 있었습니다. 바로 짜장면.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 시장통에서 양파와 감자만 넣은 짜장면을 팔았더랍니다. 그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그리웠지만 짜장면이 보통 어려운가요. 엄마가 볶은 짜장은 시고 짰습니다. 김치담그기는 국가대표급이지만 짜장면은 무리였지요. 그러나 고기 없는 짜장면집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전 제가 해드리리라 다짐하고 인터넷 레시피를 찾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맛을 내기는커녕 춘장을 볶다보면 냄비에 늘어붙기 일쑤. 그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요. 그런데 그때 그 순간만큼은 엄마를 위해 기어이 짜장면을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왜 이리 강하던지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양파와 감자만을 넣은 짜장면을 완성했어요. 그리고 이모 두 분과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드디어 엄마의 소감! “한 입 한 입 냄새만큼 고소하고 맛있구나.”
만족한 엄마의 표정에 어찌나 기뻤는지요. 대단한 효녀라도 된 기분이었어요. 자주 해 드리마 하니 “귀찮은데 아서라, 한번 먹었으면 됐지 뭘.” 하시는 우리 엄마. 고기도 못 드시면서 고기요리는 너무나 잘하시는 엄마. 정말 사랑해요. 앞으로도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