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까르보나라가 무척 먹고 싶었다. 마침 집에는 아빠와 나, 둘 뿐이었다. 아침에 먹은 꽃게탕이 넉넉히 남았으니 아빠의 저녁상은 걱정할 필요 없었다. 분주히 면을 삶고 크림소스를 만들고 버섯과 새우를 볶는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빠도 그 맛있는 냄새를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아빠는 괜히 멋쩍은 표정으로 “뭐 만드는 거냐?” 라고 물으셨다. “응, 까르보나라” “까르보나라가 뭔데?” “있잖아.. 스파게티 같은거” “아빠도 맛 좀 볼 수 있나?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그 순간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스테이크나 스파게티를 먹은걸 본적이 없다. 삼겹살이나 냉면을 드시는 건 자주 봤지만... 사실 아빠가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우리들처럼 손잡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갈일은 없으니까, 한식이나 중식외의 다른 음식을 아빠가 한번이라도 먹어보셨거나 그래서 좋아하게 될 일도 전혀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아빤 항상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양보하느라 그럴 여유조차 쉽게 못 가지셨을 텐데, 그전에 내가 먼저 아빠 손을 잡고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한번 가볼걸 하는 후회가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애초에 나 혼자 먹으려고 만들었던 스파게티의 양은 너무 적었다. 아빠도 딱 한 젓가락 정말 맛만 보시더니 "우리 딸이 만들어서 그런지 맛있다.“라고 하시고 결국 꽃게탕에 저녁을 드셨다. 그게 어찌나 죄송하던지.. 다음엔 네 식구 모두 사이좋게 둘러앉아 크림 스파게티, 토마토 스파게티 뭐든 좋으니 소박한 이탈리안 음식 한상 차려서 먹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생선 머리만 좋아한다던지, 아빠는 무조건 한식만 좋아할 거라는 그 이기적인 생각부터 버린 다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