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별주부였다.

조회수 11360 추천수 0 2012.03.21 14:11:24

 

이때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맛있었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토끼 간요.

토끼 간을 맛본 곳은 할아버지 댁이다. 지금은 부산광역시로 편입된 기장군 임랑마을에 위치한 너른 집이었다. 옛날 시골집으로, 집 안에 외양간이 있었고 외양간 안에는 농사일 돕는 소 한 마리가 있었다. 그 표시로 대문 앞에는 항상 둥글 넓적한 쿠키 같은 소똥이 떨어져 있었다. 운동장만큼 넓은 마당에는 끝도 없이 뻗어있는 빨래줄을 Y자 긴 막대기가 중간에서 잡아주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다들 그 막대기로 빨래줄에 흔들흔들 거리다 막대기가 빨래줄에서 빠져버려 혼이 나곤 했다. 여물을 주기 위해 짚을 자르는 작두도 있었다. 손자 손녀들은 다들 짚을 서걱서걱 자르는 느낌과 소리가 좋아 앞다퉈 하려고 했는데 어른들은 당연히 항상 말리셨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누군가는 마당에서 빨래줄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손자손녀 중 가장 연장자인 나는 왜 내 사촌 중에는 또래가 없어 항상 이렇게 명절을 지루하게 보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누워있었던 걸 보면 설날이 아니라 추석이었나 보다. 그렇게 하릴없이 있는데 할머니께서 검은 조약돌같이 생긴 걸 내미셨다. 당시 어느 시골집에나 있던 스텐 그릇에 담아오셨다. 소금에 찍어먹으라며. 토끼 간이었다. 조금 전 나무하러 산에 갔다 오신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토끼가 들려있었나보다. 할머니께서는 그 중 간을 쪄 오셨던 것이다. 토끼간이니 당연히 몇 조각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맛은.. 과연 별주부가 고생을 할 만큼 대단한 맛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그럼 우리는 용왕이었나? 그래. 우리는 용왕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주부셨다. 용왕 모습에는 당연히 할아버지가 더 잘 어울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야 말로 오래 오래 사시도록 토끼간을 드셨어야 하는데, 열 살도 안 된 손자손녀가 토끼간을 먹게 하셨다.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는 남동생만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용돈도 남동생만 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만수무강할 수 있는 토끼간을 나와 여동생도 먹었던 걸 보면 우리도 조금은 사랑하셨나보다.  별주부는 돌아가셨지만 용왕은 건강하다. 다들 체력 좋고 감기 몸살 잘 안 하고 아파서 조퇴한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별주부셨다. 용왕님을 건강하게 하는 토끼 간을 찾아오는 임무에 성공한 별주부셨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63383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68612
101 여자 할머니의 밥상 banana0326 2012-02-03 12134
100 상당히 매웠을텐데.... ohjh918 2012-07-07 12135
99 생김치 한다라이 janghsuck1 2013-01-10 12136
98 <맛선물> 계란 한 알, 딸기 한 알 prup 2012-09-24 12139
97 여름철 입맛없으신 분들에게 선물해드리고 싶은 맛~ mooi03 2012-07-23 12141
96 아빠의 냉이튀김 최미정 2013-03-04 12148
95 친정어머니께 간장게장을 선보이다 (사랑을맛을타고 응모) cwal1927 2012-07-30 12162
94 <사랑은 맛을 타고>환상의 섬 발리에서의 컵라면누룽지탕 hongsil65 2012-02-02 12170
93 <맛선물> 마릴라 이모님의 토스트와 코코아 congimo 2013-02-28 12172
92 한겨울 먹는 못생겼지만 맛있는 추억의 맛. songi535 2013-03-17 12176
91 할머님의 마지막 진지상. imagefile ksyo6465 2011-11-14 12186
90 <맛선물> 아들의 이른바 <사죄의 초밥> file joungde 2012-11-13 12196
89 <맛선물> 외국생활의 허기를 달래줄 닭볶음탕 선물~~ dhsmfdmlgodqhr 2012-12-13 12204
88 <맛선물 응모> 40년만의 짜장면 nunga2 2012-07-19 12209
87 사랑은맛을 타고 응모 -- 뜨거운 여름의 콩국수 splanet88 2012-06-09 12212
86 <맛선물>그냥 김밥 vs 소고기 김밥 hsang 2012-11-23 12212
85 <맛 선물 > 사랑 담은 백김치 kimhj0703 2012-12-13 12224
84 떡케익이 가져다 준 작은 행복 haibang0815 2012-12-02 12261
83 꿈에서라도 설렁탕을...... jean7208 2012-07-20 12292
82 <맛선물>멀어져버린 그들에게 언젠가 다시 생태찌개를 끓여줄 날이 오기를 cjhoon73 2012-12-13 1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