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을 먹는 두 가지 방법
사십 년쯤 전, 중학생이었던 남편은 집에서 양계장을 하는 친구와 자취를 했대요. 토요일이면 친구 어머니가 커다란 보따리를 가지고 오셨는데 남편이 있을 때는 풀지 않으셨답니다. 세탁을 한 옷이나 일주일치 밑반찬 뭐 그런 것들이 들어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중에 삶은 계란도 있었다는 겁니다. 먹을거리가 넘치는 요즘 세상에 들으니 이상하다 싶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친구 어머니를 무작정 야속하다고만 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런 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니 가끔 식탁에 계란찜이 올라왔다는 겁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그런데 저는 기억에도 없는데 “왜 자꾸 얘들 반찬을 먹어? 자긴 다른 것 좀 먹어.” 하면서 계란찜 그릇을 식탁에서 재배치를 했다는 겁니다. 남편 앞에 있던 것을 아이들 앞으로 옮겼다네요.
그랬다고 해도 뭐, 제가 남편이 먹는 것이 아까워서 그랬을까요? 아무런 고명도 얹지 않은 거라 맛이 좀 밍밍하니까 그게 무슨 어른의 반찬이 되랴, 싶었겠지요. 그렇게 세월이 지나 아이들은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직장으로, 학업으로 집을 떠났어요.
요즘은 오직 남편만을 위해서 가끔 계란찜을 식탁에 올립니다. 옛날 방식으로 합니다.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그대로 밥솥에 넣어 찌거나 냄비에서 중탕을 합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순도순 나이 먹어가는 부부 같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먹을 때와는 달리 남편을 위해서 하는 계란찜에는 파나 고추를 썰어 넣어 고명을 올립니다. 파를 싫어하는 저는 자꾸만 밑부분을 파먹습니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만하면 마누라가 파를 먹기 싫어서 그러는구나, 감을 잡아야 할 텐데 그때마다 남편은 소리를 지릅니다. “차근차근 못 먹어? 왜 자꾸 땅굴을 파는 거야?” 사실은 소리 지를 일도 아니에요. 남편은 파를 좋아하거든요. 반찬에서 남편은 파부터 골라먹고, 저는 파를 골라내놓습니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는데, 파를 좋아하는 남편은 계란찜의 윗부분을 저는 아랫부분을 먹으면 될 일 아닌가요? 부창부수라. 저도 한 마디 합니다.
“앞으로 계란찜 먹을 거야? 말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린 시절 받았을 상처에 마음이 짠해서 가끔 남편만을 위한 계란찜을 식탁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