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집오셨을 때부터 첫손주는 딸이었으면 하셨던 터라 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유별나게 날 예뻐하셨다.
항상 마실 나갔다 돌아오실 땐 빈손으로 돌아오시는 법이 없이 과자를 들고 오셨고, 생선이나 게를 좋아했던 날 위해 손수 살을 발라주셨다.
뿐만 아니라 내가 동네에 나가 놀다가 다칠까봐 따라다니셨고, 더운 여름날 내가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해주셨다.
인형놀이를 하고 싶어하면 기꺼이 당신의 양말을 내어 인형옷을 직접 만들어 주셨고, 같이 쪼그리고 앉아 사금파리로 소꿉놀이도 해주셨다.
당신을 위해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실 땐 꼭 거스름돈 50원을 남기라 하시고 눈깔사탕이나 종이인형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런 엄청난 사랑으로 세상을 독차지하며 살게 하시던 분이 일흔을 넘어 뇌출혈을 겪으셨다.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도 항상 데리고 다니시며 사주셨던 음료수 한 병....
그 달콤함에 마냥 신나 따라 다녔는데 당신의 병은 점점 심해지셨다. 마지막엔 거의 식사를 못하셨기에 식사 대신 드셨던 마당 뒷편에 쌓이던 빈 두유병들....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위해 음식조절을 하려다 보니 우유보다는 두유가 좋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건 수입콩에다 단성분이 들어있어 직접 만들어 주려 여기저기 요리법을 찾다 보니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내게 엄청난 사랑을 주셨고, 그 나이때의 어른들을 뵈면 꼭 당신을 생각나게 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난 할아버지께 두유한병 사다드린적이 없다.돌아가실 때쯤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에 신나 당신께 소홀해 돌아가셨을 때 참 많이도 울었는데 막상 아무것도 해 드린게 없다는걸 이제야 깨달았다...
콩밥을 싫어해 콩을 골라내던 내게 "밭에서 나는 우유"라며 한알 한 알 내입에 넣어주시던 당신의 건강을 위해 두유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