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탕? 토란국!

조회수 8068 추천수 0 2011.10.19 11:05:10
 

  엄마는 별 볼 일 없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나의 선언에 사흘을 우시더니 털고 일어나, ‘잘난 딸의 고집’을 막을 자신이 없으므로 받아들인다며 서둘러 결혼을 진행시키셨다. 다행히 당시 남편은 군복무를 마친 후였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직장 생활 초기인지라 그닥 저축이 많지 않았기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무척 추웠던 빨간 벽돌 슬라브집 2층 구석의 방 한 칸을 얻어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요리 실력이 매우 서툴렀지만 집에 사람들을 불러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1989년 당시 시절이 하 수상해서였는지, 정신세계가 쫌 순수해서였는지 결혼 4개월 만에 남편은 소신을 지키다 직장에서 잘렸다. 오늘은 마산, 내일은 광주 등에서 시위를 하던 정신없는 그 때 결혼 후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혼수와 함께 준비했던 ‘손님상 요리와 매너’라는 책을 닳고 닳을 정도로 읽고 남편이 속한 조직의 대장님, 부대장님을 비롯한 쫄다구들을 모시기로 했다. 탕평채, 오징어 불고기, 잡채 등등 손이 많이 가나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한식상을 차리기로 정한 후 시장을 갔다. 지금보다 재래식 시장이 살아 있던 그 당시, 남편이 시장 바닥 좌판에 거칠게 진열되어 있는 토란을 보더니 “나, 저거 먹고 싶어!”한다. 결혼 후 첫 생일인데, 아직 콩깍지도 멀쩡히 살아 있는데 뭘 못해주랴! 토란을 파시는 아줌마께서 껍질을 조심해서 벗긴 후 쌀뜨물에 데쳐서 요리하면 아린 맛도 없고 맛있다고 하시는 말에 무조건 샀다. 그리고, 짜잔! 드디어 손님들이 오기로 한 운명의 날! 볶고, 무치고, 부치고.. 그런데, 갑자기 불쑥 엄마가 오셨다. 불고기와 김치와 사과 등 갖가지 과일을 넣은 상자를 머리에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오신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상자를 내려놓으시더니, ‘사위 첫 생일은 장모가 차려주는 것이라’시더니 휙 가버리시는 것이었다. 아! 그 때의 서러움과 고마움이란!!

  어쨌거나 엄마의 도움과 요리책, 나의 무모함으로 한 상을 차렸다. 두둥~ 특히 토란, 구체적인 정보 없이 무조건 쌀뜨물에 데친 후 된장을 풀고 호박, 감자, 양파와 함께 섞어 곰국 고는 큰 솥에 가득 끓였다. 그런데 그 맛이란! 미끈덩거리며 느른했던, 국이라고 하기엔 좀 진하고 탕이라고 하기엔 밋밋했던 정체불명의 탕 또는 국. 손님들은 그럭저럭 적당한 인사멘트를 날려 주셨다. “정말 책만 보고 차린 상 맞아?” 남은 그 토란국을 남편이 혼자 다 먹은 이후 다시는 토란국 안 끓인다. 옆에서 ‘나 토란 좋아하는데..’라고 이야기해도 무시한다. 이미 콩깍지는 없어졌을 뿐이고, 나는 토란국 끓이기 싫을 뿐이다. 또한 파스타 식당을 내겠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철밥통을 내친, 이태리 유학파가 가르치는 학원을 다니다 “이거 정말 배우려면 이태리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아니! 가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야!!”라고 나의 사나워진 눈초리를 힐끔힐끔 보며 말하는 남편의 늦은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님을 밝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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